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어느 날 배불리 먹이를 먹고 늘어져 있던 사자에게 멧돼지 한 마리가 시비를 걸어온다. 평소 같았으면 한입에 잡아먹었겠지만, 너무 배가 불렀던 사자는 그냥 그 자리를 피하려 한다. 그런데 멧돼지는 사자가 자기를 무서워해서 도망간다고 착각한다. 그리고는 결투를 신청한다.

일주일 뒤에 결투를 하기로 하고 의기양양해서 집으로 돌아온 멧돼지.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부인은 ‘우린 이제 사자에게 다 죽었다’며 울어대고, 멧돼지는 그때야 자신이 크게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멧돼지의 부인은 사자와의 결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묘책이라며 몸에 똥을 바르라고 알려준다.

부인이 시키는 대로 몸에 똥칠을 하고 결투에 나간 멧돼지를 보고 사자는 더러워서 피해버린다. 그때부터 멧돼지들은 사자가 자신들을 해칠까 두려워 몸에 똥을 칠하고 다닌다고 한다.”

시인 안도현이 얼마 전 펴낸 ‘불교동화’에 나오는 멧돼지 이야기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착각에 빠질 경우 끔찍한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교훈을 담은 우화다. 멧돼지가 등장하는 설화는 이밖에도 여러 편이 있다.

멧돼지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거론된다. 세종 13년(1431년) 8월 강원도 회양부에서 강무장(講武場)의 사냥금지령을 해제해 달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강무장은 임금과 신하들이 사냥을 하며 무예를 단련하던 곳이어서 백성들의 사냥을 금지돼 있는 바람에 멧돼지가 늘어나 주변 농가에 큰 피해가 있다는 내용이다.

문종 1년(1451년)에도 같은 보고가 올라오자 이번엔 아예 사복시(司僕寺)의 병력을 투입해 멧돼지를 퇴치하기도 한다. 중종 13년(1518년) 1월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멧돼지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 한 씨의 능인 공릉(恭陵)을 파헤쳤다. 중종은 “멧돼지의 소행이라 하나 예사롭지 않은 재앙(災異)이니 마땅히 대신을 보내 제를 지내게 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대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던 멧돼지가 요즘엔 매스컴에 자주 아예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언론보도 내용은 주로 멧돼지가 마을부근에 출몰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거나 인가에 나타나 사살됐다는 것 등이다. 고속도로에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도심의 수영장에 빠져 익사한 내용도 있었다.

멧돼지 출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자 정부가 ‘멧돼지와의 전쟁’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달 말 “멧돼지 개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 올 들어서만 도심출현 사례가 25건에 이르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며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전국 19개 시․군에 멧돼지 수렵장 7527㎢를 운영해 전문 엽사를 동원, 올해의 두 배가 넘는 8000여 마리를 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촌지역의 농작물을 마구 파헤쳐 농민들을 시름에 빠지게 하는 멧돼지를 포획해 나가자는 정부 방침은 일단 수긍이 가는 정책이다. 그런데 멧돼지 개체수가 늘어났다고 멧돼지를 마구 잡아 죽이는 게 능사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멧돼지는 과일·나무뿌리와 작은 포유류, 물고기, 죽은 동물의 사체까지 먹는 잡식동물이다. 그런데 멧돼지가 인가에까지 접근하는 시점은 대개 추수가 끝난 가을철 이후다. 즉, 이때부턴 숲속에서 더 이상 식물성 먹이를 구할 수 없기에 생존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세계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미 산중에는 멧돼지가 의지할 만한 동물성 먹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불법으로 남획했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저잣거리로 내려오는 것은 인간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게 동물학자들의 견해다. 마구 사냥해서 개체수를 줄이는 것 말고 인간과 멧돼지가 함께 이 땅에 공존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