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 문교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것은 한글과 한문의 관계다. 글은 그 민족의 영혼이자 정신이며, 나아가 역사며 문화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글을 가졌고 또 사용해 오면서도 늘 모호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아니 모호한 정도를 넘어 늘 다툼과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우리가 아무리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강조한다 해도 우리 말 우리 글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경복궁 남정문의 현판인 ‘광화문(光化門)’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광화문 현판 글씨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역사단체는 한자로, 한글단체는 한글로 표기해야 된다며 시위와 설전이 오갔으며, 문화재청은 결국 역사단체의 손을 들어 한자로 결론 내렸다. 물론 복원이란 의미로 볼 때도 원래 한자였으니 한자로 표기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왜 이런 설전이 오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그 설전의 이면에는 한글과 한자에 대한 인식과 그 정체성에 대한 무지가 가져온 한바탕 소동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마디로 한글은 우리 글이고 한자는 중국 글이라는 단정에서부터 오는 하나의 해프닝이다.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석학 안호상 박사와 중국의 문호 임어당 박사와의 일화가 생각난다. 한자가 중국의 글자라 말하는 안호상 박사에게 임어당 박사는 한자가 ‘당신네 글’이라고 해 무안을 당했던 일화는 수치의 에피소드로 오래 기억되며 오늘까지 회자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는 중국 역사서 중 으뜸의 정사로 꼽힌다. 그 사기에는 중국 고대사의 확실한 연대 기록은 주(周)나라 때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주나라 이전시대는 중국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중국 문화의 시원은 크게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은나라는 한자의 전신인 갑골문자(甲骨文字)를 만들어 사용했고, 청동기 문화를 꽃피움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했으며, 흰옷을 입은 동이족(고조선 이전부터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민족’을 뜻함)이었다. 이어서 서역으로부터 출현한 화족(華族)인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중원에 세웠으니, 바로 오늘날 한족(漢族)의 등장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인 공자 역시 이 시기 인물이니, 그의 저서 ‘공자세가’ 등에서 자신이 은의 후손임을 밝히는 부분도 놀라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잠시 중국의 왕조를 살펴보면 商·殷나라(동이족) 周나라(한족)를 이어 춘추전국시대 秦(최초의 중국 통일국가) 漢 삼국시대 5호16국시대 隋 唐 宋 金(최초 이민족국가 즉, 한족이 아닌 여진족) 元(징기스칸 몽골) 明(한족) 淸(후금 즉, 여진족)을 거치면서 오늘의 중국(90% 이상이 한족)에 이른다.

이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중국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왔고,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의 힘이 약해지고, 진·한 등 한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문자로 둔갑해 알려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살펴 볼 것은 한글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합이 28자로 구성된 우리나라 글이다. 하지만 이 한글 또한 고조선 시대 삼랑 을보륵이 만든 가림토문자에서 비롯됐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당시 글자의 형식을 갖춘 상형문자(象形文字)인 진서를 읽는 말소리가 지방마다 달라 이를 통일하기 위해 만든 소리글자다. 다시 말해 백성들이 의사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천지만물의 소리는 무한하다. 이러한 무수한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필요했고, 그 글자가 바로 가림토문자며, ‘천지만물의 문자’라 칭한다. 즉, 천지자연이 내는 소리에 부합하는 천지자연의 글자가 가림토 글자며, 천지자연의 모습도 천지자연의 소리에 해당한다. 즉, 천지자연의 형상은 곧 소리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다시 삼재(三才)에 담았다. 가림토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소리글자다. 천지인 삼재는 ㅇ ㅁ △이다. 즉, 하늘과 사방이 있는 땅, 그리고 서 있는 존재인 사람을 나타낸다. 이를 다시 축소화 하니 • ㄧㅣ로 나타난다. 전자는 기본자음으로 천지인 삼재며, 후자는 기본모음으로 천지인 삼재가 된다. 이같이 천지인 삼재 모음과 자음이 가림토 38자를 구성했으니 인류최초의 소리글자인 가림토문자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뜻글자(표의문자)인 상형문자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가림토문자가 만들어졌듯이, 세종대왕 또한 백성들이 뜻글자인 한자의 어려움에서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잊혀지고 사라져간 천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리글자 즉, 가림토 글자를 재구성해 냄으로써 우리 고유의 한글을 재창제해 냈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단군조선 시대의 제도와 유습을 부활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훈민정음 작업에 착수했음을 고증과 문헌을 통해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홍익사상에 의한 홍익문화의 계승이다.

이제 정리하자면 우리 민족은 상고(上古)에서부터 우주만물의 형상과 소리를 통해 하늘의 뜻을 깨닫고, 그 뜻과 하나 되기 위해 글과 말을 가졌던 그야말로 하늘의 문화를 간직한 하늘의 민족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겠다.

결론적으로 한글도 한자도 우리의 글이라는 사실이다. 소리와 뜻은 상호 필요충분조건을 갖추며 천지만물을 분별하고 나아가 하늘의 뜻을 깨닫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문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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