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2쿼터 종료와 함께 필리핀 남자농구팀 데이비드 게리의 원핸드 3점슛 버저비터가 림을 통과하자 화성실내체육관의 2000여 필리핀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필리핀 마닐라의 홈코트라고 느껴질 정도로 필리핀 관중들의 응원열기는 경기 내내 식을 줄 몰랐다. 지난달 28일 카자흐스탄과 8강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가진 필리핀은 67-65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카자흐스탄, 카타르 등과 1승 2패로 동률을 기록, 득실점에서 뒤져 조 4위를 머물러 바라던 4강 진출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필리핀 관중들은 경기 후에도 열심히 뛴 자국 선수들을 격려하고 셀카를 찍기 위해 코트 주변과 경기장 주위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27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벌어진 한국과의 경기서도 필리핀을 응원하기 위해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자스민 의원(새누리당)이 경기장을 찾았고, 수천여 명의 필리핀 관중들이 한국 관중들과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필리핀 관중들은 대부분 수도권 일대에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이거나 일부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들과 자녀들이 대부분이었다.

몽골인 관중들도 필리핀 못지않은 관심과 응원 열기를 보였다. 24일 한국과 전반전 1점차까지 따라붙으며 선전했던 몽골팀의 경기가 벌어질 때 몽골 관중들 수백여 명이 체육관을 찾아 뜨거운 응원을 토해냈다. 몽골국기를 흔들며 ‘몽골리아’를 연호하는 몽골 관중들은 전력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동국대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밧투브신 빌궁은 몽골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말을 곧잘 하는 밧투브신이 정확한 내외곽슛과 뛰어난 개인기로 상대 코트를 휘저으면 몽골팬들의 환호성도 크게 높아갔다. 몽골 관중들도 필리핀 관중들처럼 한국에서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온 이주자들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각국 응원단의 광경엔 다문화사회가 자리잡아가는 한국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체육관 외국관중들은 각양각색의 얼굴이고 몸차림이지만 다문화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 관중보다 필리핀, 몽골 관중들이 많은 것은 현재 다문화 사회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 총인구 비율로 100만 명 이상을 넘어섰고, 최근 결혼하는 젊은 신혼부부 중 10쌍 중 1쌍이 다문화 부부라는 통계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사회는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국제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경기가 벌어질 때면 많은 동남아 관중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인구변화와 이동에 따른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이국에서 현재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만 먼 훗날 행복한 삶을 기약하는 동남아 취업자들과 다문화 가구들을 보면 1970~80년대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의 사막에서 온갖 어려움을 다 이겨냈던 중동 건설 근로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나 노동력을 밑천으로 중동에서 한증막 찜통더위와 모래바람을 참아가며 억척스럽게 돈을 벌던 당시의 우리 중동 건설 근로자들은 한국팀의 경기가 열릴 때면 몇 시간씩 자동차를 타고 경기장을 찾아 한국의 승리를 응원하며 뜨거운 조국애를 느끼고 짙은 향수를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이제는 동남아인들이 예전 우리의 중동 근로자들과 같은 상황이 됐다. 인천아시안게임 체육관을 찾는 동남아 취업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 우리의 아픈 기억을 더듬어 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가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생활에 찌든 이들에게 편안하게 정신적 위안거리를 줄 수 있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참가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스포츠의 진리를 동남아 관중들을 통해 다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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