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수백 톤이 넘는 육중한 기관차는 수만 마력의 힘을 자랑하지만 가느다란 두 줄기 철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대한민국의 준비된 통일역량은 충분하다, 지식, 자본, 파워, 그러나 과연 인재도 충분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불충분하다. 현재 우리 한국에는 2만 7000여 명의 탈북민들이 있다. 바로 이들이 통일열차를 끌고 갈 최고의 통일역량이라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그들을 가리켜 혹자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다른 혹자는 ‘작은 통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묻고 싶다. ‘먼저 온 통일’은 찬란하냐고. 또 ‘작은 통일’은 큰 통일의 앞날을 밝게 해 주고 있느냐고.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대부분의 탈북민은 이 사회의 기초수급생활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마디로 바닥에서 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뛰어든 사람이 부자로 산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다. 하지만 통일역량 준비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것 또한 비정상이다.

제발 정치인들과 고위관료들은 탈북민들 앞에 나타나 “여러분은 통일의 역군입니다. 먼저 온 통일입니다” 이런 말 삼가해 주기 바란다. 침 바른 소리 그만하라는 뜻이다. 차라리 “여러분은 통일의 머슴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라면 더 훌륭할 것이다. 탈북민들을 통일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 정부가 만든 북한이탈지원재단이란 지원기관이 있는데 여기 연간 지원예산이 무려 260억 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 소중한 돈이 대부분 인건비 등으로 나가는가 하면, 실질적인 인권개선이나 통일준비에는 전혀 쓰일 수 없다고 탈북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정착지원 기관이어서 순수목적에 쓰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재단의 수뇌부에는 현재 정부가 국가개조의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있는 ‘정피아’ ‘관피아’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끓는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 예비역 군인이 탈북민 지원기관에 들어와 있는 현상이야말로 국가개조의 첫 번째 목표가 아닐 수 없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가에 가보면 이민정책은 이민자들에게 맡겨져 집행되고 있다. 거대한 미국의 이민국장은 바로 이티오피아인 이민자가 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탈북민 정책을 탈북민들에게 맡기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탈지원재단에는 이사회가 있는데 십여 명의 이사 중 탈북민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러고도 새로 온 이사장은 “탈북민 모두를 독일의 메르켈로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재단의 이사도 못 되는데 어떻게 통일국가의 총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통일역량도 권력배분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탈북민들을 믿고 그들에게 탈북민정책을 맡겨 실험해 보면 과연 그들이 과연 통일역량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결과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김일성은 해방 직후 소련에서 460여 명의 인재들을 데려다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다. 탈북민들은 북한의 각지에서 왔으며, 여기 한국에서 배출된 대학 졸업자만도 1500명이 넘는다. 이들이 갑작스러운 북한 붕괴 시에 북한에 투입되면 사회통합과 자유화 등에서 놀라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지역 내의 학연, 혈연, 지연을 가진 연고세력이 충분하며 다른 사람의 말보다 북한 주민들은 이들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에게 투자하면 통일 후 그것은 통일국가의 찬란한 열매로 환원될 것이다. 현재도 탈북민들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송금해 북한 시장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이렇게 형성되고 있는 상인계층이 북한 독재청산에 위대한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혜택은 적지 않지만 이제 정부는 과연 그 지원이 실질적으로 탈북민들의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지 재확인할 때가 되었다. 일부 관료들이 지원재단에 낙하산으로 내려와 태생적인 권위를 누릴 때 대부분 탈북민들이 3D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자칫 그들은 통일역량이 아니라 반통일역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먼저 온 통일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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