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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여의사 있는 산부인과 찾은 환자 37.3%
“여성 의료진에 불쾌감 느껴… 병원가기 두려워”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대학생인 김한나(가명, 25, 여) 씨는 최근 월경불순 등의 증상으로 여의사가 있는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수치심만 느끼고 나왔다. 여의사가 진료하는 동안 “여자가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녀서 그렇다” “남자친구는 몇 번이나 바꿔봤어?”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여러 차례 고민하고 여의사라서 용기 내서 갔는데 모욕감만 느꼈다”며 “같은 여자인데도 의사에게 그런 말을 들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여성들은 산부인과 내원을 어려워한다. 우리 사회는 젊은 여성이 산부인과를 드나드는 것에 대해 아직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고, 내진 당시 겪게 되는 수치심이 두려워서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생리통이 심해도 산부인과를 찾는 경우가 적으며, 찾게 되더라도 여의사가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다. 하지만 여의사라고 안심했다가 도리어 더 큰 모욕감을 느껴 분노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민정(가명, 29, 여) 씨는 “산부인과 특성상 속옷을 탈의한 후 다리를 벌리고 진료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의사가 간호사와 ‘아까 그 케이크 뭐지? 정말 맛있겠다’ 등 수다를 떨었다”며 “게다가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툭툭 내뱉었다”고 분노했다. 이 씨는 “같은 여자로서 환자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사적인 수다를 떨 수 있느냐”며 “이 일로 산부인과를 가는 게 더 무서워졌다. 다시는 그 병원을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여성 의료인이나 의료기사가 동성이라도 성희롱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 환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를 받아 실시한 ‘진료 과정의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료할 때 성적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고 답한 여성의 37.3%가 ‘여성 의료진으로부터 느꼈다’고 답했다. 수치심을 준 대상이 남성 의료진이라고 응답한 여성은 80.5%였다.

유형별로 보면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는 공간에서 진찰 또는 검사를 위해 옷을 벗거나 갈아입음’이 4.6%, ‘의료인 또는 의료기사가 나의 외모나 신체, 옷에 대해 성적인 표현을 함’이 3.0%, ‘의료인 또는 의료기사가 진료와 관계없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상태에서 나의 성생활이나 성경험을 물어봄’ 2.5% 등으로 나왔다.

진료과정에서 의료인이나 의료기사가 먼저 환자에게 구두로 증상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의 부적절한 표현과 말이 환자에게 성적 불쾌감이나 성적 수치심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료과정 성희롱이 공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거나 실제 피해 구제에까지 이른 사례는 많지 않다. 의료기관 이용자가 의료진의 언동으로부터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진료과정 성희롱 여부 판단을 위한 지식의 부족 , 입증의 어려움, 문제제기의 곤란 등의 이유로 이를 성희롱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진료과정 중 의료진과 환자 간의 성희롱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안내서’를 처음으로 발간했다. 안내서의 주요 내용은 ‘성희롱의 법적 정의’ ‘진료과정의 성희롱 판단 기준’ ‘구체적인 사례와 성희롱 발생 시 해결방안’ ‘예방법’ 등이다.

여성단체는 안내서를 제작에 그치지 않고 홍보해야 실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송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가해자는 자신이 성희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책이 나와 경각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라며 “안내서를 제작만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홍보를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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