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여자 연예인들의 군대 체험을 담은 지상파 TV 프로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군특집’이라는데, 군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치기 여성들의 리얼 체험이 재미를 주고 있다. 언론들도 이 프로가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여자 연예인의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모습이 인기 비결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낫다. 시청자들이 군대 체험 프로에 열광하는 것은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향수 덕분이다.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되는 법.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아프지만 그리운, 묘한 모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남성들이 군대 체험 프로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그런 모순 덩어리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군대 체험 프로는 군대에 대한 추억에 관음증이 추가된다. 화생방 훈련을 하면서 눈물 콧물을 쏟고, 입을 크게 벌려 주저 없이 쌈밥을 먹는 모습은 평소 볼 수도 상상하기도 힘든 ‘귀한’ 장면인 것이다. 대놓고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는 쾌감이 TV 속으로 빨려 들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럴듯한 스토리로 만들어내는 ‘편집의 힘’도 대단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실 속 군대는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단체로 훈련을 받거나 귀엽게 앙탈하고 애교로 웃음을 주지도 않는다. 군대는 결코 낭만적이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목숨을 건 가혹한 훈련과 통제된 생활,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엄격한 위계, 단절감과 고립감으로 영혼이 메말라가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고된 훈련 뒤의 휴식이나 두고 온 여자 친구가 보내온 편지가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낭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여자 연예인의 ‘리얼’ 군대 체험 프로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훈련을 받던 간부 병사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다거나 어느 부대 어느 병사가 몹쓸 짓을 했다는 뉴스 따위가 쉼 없이 들려오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안기며 하급 병사를 때려 죽였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고, 그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잊은 것처럼 보인다. 군대에 간 여자 연예인의 모습에 “감동적이야!”라고 외치고 있는 동안, 어느 부대 어느 병사가 또 얻어터지고 있는지 모른다.

호주에서 온 뚱보 남자가 허우적거리거나 우리말이 서툰 아이돌 스타가 타잔처럼 “아아아~”를 외치며 밧줄을 타는 모습이 우리의 진정한 군대 모습은 아니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여자 연예인들이 숨을 헐떡이며 눈물 콧물을 쏟는 모습도 우리의 현실 속 군대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은 현실 속 아픔들을 잊게 하는 최면제이고 가공되고 연출된 허구일 뿐이다.

‘리얼’이라는 포장에 진짜 ‘리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엄중한 현실 속 군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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