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에 스위스 제네바주민 참여율 저조

16세기 로마 가톨릭에 맞서 마르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을 선도한 인물로 알려진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를 놓고 한 시대를 선도한 ‘신화적 인물인가, 폭군인가’라는 역사학자들의 엇갈린 평가로 의견이 분분하다.

3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보도에 따르면 “칼빈은 제네바에 오늘날 자본주의의 토대를 제공한 개혁가의 이미지와 함께 엄격한 교리를 앞세운 무자비한 독재자 등 엇갈린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며 따라서 제네바 주민들의 이번 칼빈 기념행사에 대한 반응은 예상 외로 저조한 편이라고 밝혔다.

1509년 프랑스 북부에서 장 코뱅이라는 이름으로 출생한 칼빈은 당시 프랑스 내 가톨릭 세력의 박해를 피해 인접한 제네바로 이주한 인물이다. 제네바 주민들은 칼빈에 대해 “제네바에 위선적인 도덕성을 부여한 따분한 방랑자쯤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헤럴드 트리뷴은 보도에서 “칼빈은 제네바 학교 교육과정에서 검소하나 도덕을 강제하기 위해 신체적 억압을 동원한 강압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교리 문제에 있어서는 비관용적 태도로 일관해 동료신학자인 미카엘 세르베가 삼위일체를 부인하자 그를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 그의 신학적 사상에 대해 문제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또 폴 카루스는 “칼빈은 제네바시의 종교국 수장으로 있는 동안 자기의 의견이나 교리사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녀재판을 통해 40여 명을 이단과 마녀라고 몰아 화형 등 극형으로 죽였다”면서 칼빈의 만행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제네바 소재 종교개혁박물관의 이사벨 그래슬레 소장은 “칼빈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신화와 폭군’ 사이에서 아직도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역사적 진실은 이들 사이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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