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사는 박승배(76) 씨의 집은 재난등급 ‘D’를 받은 재난위험시설이다. 때가 탄 이불 주위에 먹다 남은 음식, 담배, 가위, 쓰레기 등이 널브러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곳곳 위험요소 ‘여전’ 방 안에 쓰레기 한가득
연탄가스 새고 담뱃불에 이불 타기도 해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여기가 더 시원하니까.”
일명 ‘비둘기 할아버지’로 불리는 박승배(76) 씨가 올여름을 난 곳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집 앞 골목 비닐 위다. 벽돌을 베개 삼아 자주 이곳에 누워 있는 박 씨에게 ‘집 놔두고 왜 여기 누워 있느냐’고 질문하면 “시원하고 편해서”라고 답할 뿐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숭인1동 5통장인 이호현(57, 남) 씨와 함께 찾아간 박 씨의 집은 3년 전보다 더 허름하고 열악했다. 이 집은 종로구청으로부터 재난등급 ‘D’를 받은 재난위험시설이지만 여전히 박 씨가 살고 있어 이 씨가 마음 졸이며 자주 들여다보는 곳 중 하나다.

박 씨의 집 벽에는 재난위험시설이라는 말과 함께 ‘건축물이 30년 이상 노후화돼 건물 붕괴 및 외벽 마감재 타일 탈락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접근을 삼가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 고장난 대문을 고쳐주고 있는 서울 종로구 숭인1동 5통장 이호현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예전에 이 집은 홀로 사는 박 씨가 외로워서인지 새들이 먹을 수 있는 사료를 쌓아둬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마을 주민들이 부르는 ‘비둘기 할아버지’란 별명도 이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는 길고양이가 먹을 수 있게 사료를 부은 참치통조림 몇 개가 마루에 널브러져 있다.

3년이 지난 현재 박 씨의 집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살펴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불과 베개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검은 때로 얼룩져 있었다. 늘 머리 옆에 두던 낡은 버너와 주전자는 그대로였다. 방 안에는 박 씨가 먹고 방치해둔 음식물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박 씨가 외출할 때 사용하는 넥타이만 옷걸이에 잘 정리돼 걸려 있었다.

노후화되고 위생적이지 못한 집 환경이 박 씨에 대한 조치가 시급한 상황임을 알려주고 있으나 구청이나 사회복지 기관에서도 집에 있겠다고 말하는 박 씨의 고집을 꺾지 못해 지금은 거의 포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박 씨의 안전이다. 한 번은 하루에만 길에서 몇 번씩 넘어져 피가 철철 흐른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이 씨와 마을 주민들이 발견했다. 집 안에서도 박 씨는 안전하지 못하다. 박 씨가 사용하는 연탄보일러가 낡아 가스가 새고 있던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던 것.

▲ 박 씨가 집 앞 골목에 비닐을 깔고 벽돌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를 목격한 이 씨는 “안에 들어갔을 때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구청에 요청해 재료비를 지원받아 고쳐줬다”고 말했다.

이불이 담뱃불에 탄 흔적도 있다. 담배를 피우는 박 씨가 실수를 하면 언제든지 큰불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또 하루는 박 씨가 문 밖에 누워 있는 것을 주민이 보고 놀라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이제는 모두가 손 놓고 박 씨의 생사 정도만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게 이 씨의 말이다. 박 씨에게는 현재 가족이라고는 형제들뿐이다. 이 중 동생인 승장(74) 씨만 박 씨의 집에 가끔 드나들며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올 추석에도 박 씨는 찾아오는 이 없이 혼자 보냈다. 박 씨의 건강이나 안전 등을 체크해야 할 관계자들도 집 안까지 들어가서 살펴보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박 씨의 초라한 현 상황과 달리 방 안에는 반듯하고 늠름해 보이는 젊은시절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이 씨는 문밖에 앉아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박 씨를 바라보며 “현재는 본인, 가족의 동의하에 당사자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혼자 사시면서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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