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안경을 닦으며

유희봉

아침 일어나
무심코 내 안경을 눈여겨보았더니
반짝이는 도금 사이 사이
파랗게 녹이 슬어 있다.

안경은 나의 분신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는
눈보라 속을 거닐다 돌아오면
뿌옇게 흐리어져버리는 유리.

세월 속에서
계절이 오면 꽃이 피듯
녹이 슬어버린 안경테
이젠 닦는데도 힘이 겹구나.

그만 닦을까봐.
다시는 닦는 일 그만둘까봐
차라리 흐린 그대로
녹슨 그대로 끼고 휘파람이나 불까봐.

 
-약력-
현대시회 고문
서라벌문예 심사위원장
한국시인협회 감사
도산 안창호기념사업회 이사
시창작론 ‘시를 써야 미래를 쓴다’
시집 ‘녹슨 안경을 닦으며(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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