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칼럼니스트·대기자

대전 종합청사 인근에 ‘둔산선사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만 평 남짓의 면적으로 많은 학생, 시민의 공원으로 역사탐방 대상지로 이용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역사시대 유적이 한 곳에서 찾아진 유례가 없는 유적으로 해방 이후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유적은 지난 1991년쯤 한창 둔산 신시가지 개발 공사 도중에 찾아졌다. 당시 필자는 지역 일간신문사 편집부국장으로 재직했는데 일찍부터 이 지역을 주목하고 있었다. 갑천 유역의 구릉지대인 둔산은 붉은 색깔의 홍적토층이어서 선사유적의 발견이 점쳐졌던 곳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른 봄 수십여 대의 포클레인이 구릉을 파기 시작했다. 필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일요일 오전 차를 몰고 현장을 가봤다. 필자는 지금의 선사유적 공원이 자리 잡은 인근의 경작지에서 노출된 다수의 유물을 보고 경악했다.

구석기시대의 사냥돌, 주먹도끼, 긁개와 신석기시대의 즐문토기, 무문토기 등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다던 것이다. 필자는 당시 유원재 공주교대 교수, 대전시 문화재위원이었던 심정보 대전대 교수 등을 다방으로 불러 유물을 보여주고 공사 중지를 요청했다. 두 전문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즉시 대전시 문화재담당공무원에 전화를 걸었다.

둔산유적은 이렇게 해서 찾아졌으며 중앙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16개 대학이 참가하는 긴급구제 발굴을 시행했다. 한반도에 보이지 않는다는 신석기시대 집 자리 70여 기가 찾아졌고 청동기 집 자리도 다수 확인됐다.

가장 주목됐던 것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구석기 유물의 수습이었다. 공주 석장리와 연계된 구석기 유적은 지금 종합청사가 지어진 주변의 지하 층위에서도 나타났다.

그런데 토지공사 측은 지금의 둔산 선사유적 약 1만 평만 보존 조치하고 모두 땅에 쓸어 묻었다. 이 정도의 보존도 우여곡절 끝에 일군 수확이었다. 이를 지키는 데 지역언론, 시민, 사회단체, 시민이 힘을 모았다. 더 많은 땅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필자의 주장에 당시 해당공무원과 토지공사 측은 ‘이제 그만 저만 하자’는 식이었다.

이 정도 면적의 보존도 엄청난 배려라는 것이다. 구석기 유적층이 발견된 자리에는 정부 3청사가 지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땅속 층위에 드러났던 구석기 유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정부청사 건물을 지었으면 얼마나 아름답고 세계적인 건물이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역사를 새롭게 복원할 유적이 강원도 춘천시 중도(中島)에서 발견돼 역사,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둔산보다 더 광범위하며 고인돌, 집자리, 비파형 청동검 등 유물은 더 다양하고 수량도 많다.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 양적으로 초유의 일이지만 문화 내용 면에서도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한 학자는 경주 버금가는 선사시티가 찾아진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청동기시대 한 도시를 복원할 수 있는 유적이며 춘천지역의 고대국가의 성립과 연결고리를 연구하는 중요사적이라고 말했다.

중도선사유적이 찾아진 곳은 현재 강원도가 레고랜드 플랜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레고랜드가 이 개발에 투자하는 금액은 1000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상생운운하며 둔산 지역처럼 일부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파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적은 한 번 파괴하면 복원이 안 된다.

한 양심적인 고고학자는 신문 기고를 통해 “이를 보존하지 못하면 ‘문화 참사’요, ‘역사참사’”라고 개탄했다. 둔산선사유적의 우를 경험한 필자도 결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필자는 도지사와 공직자와 언론, 지식인에게 문화적 양심을 호소하고 싶다.

‘중도유적의 파괴를 방치할 경우 훗날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생각하자고. 중도유적지를 파괴하고 레고랜드 공원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왜 하필 레고랜드가 중도유적지에 세워져야 하는가. 대체할 부지를 모색하면 안 되는 것인가. 중도 유적은 레고랜드보다 더 귀중한 민족 문화자산이며 긍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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