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 이봉주 선수 인터뷰

▲ 힘든 마라톤 경기를 뛰고 들어온 다음 하는 행동을 보여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신발을 벗고 쉬는 포즈를 취하며 웃어 주는 이봉주 선수. ⓒ천지일보(뉴스천지)

41세의 나이로 41번의 마라톤을 완주한 집념의 스포츠인 이봉주 선수가 마지막 41번째 마라톤 경주를 제9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마무리했다. 이봉주 선수는 이 대회를 끝으로 선수로서의 마지막을 선언했다.

전국체육대회로 시작한 마라톤 인생을 전국체육대회로 마감한 것이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도 마라토너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그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스포츠 인생을 걸어온 그에게는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 그는 ‘자만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신조를 마음에 품고 지금까지 마라토너의 길을 걸어왔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인 듯 평범했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을 하나하나 담고 있었기에 더 의미심장했다.

◆ 도전은 목표에 도달키 위한 ‘노력’

그는 육상 경기 중에서도 유독 힘든 마라톤에 도전하면서 불모지와 같은 한국 육상계에 힘을 보탰다. 그동안 그를 이끌어 온 것은 ‘목표의식’이었다. 이봉주 선수는 “선수에게 목표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며 “맹목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보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도전이라는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마라톤은 긴 거리를 뛰는 것이기에 도전정신과 목표의식이 없으면 안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봉주 선수는 요즘 후배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실망한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정신에 있어서 과거 초창기에 육상을 하던 선배들의 훈련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그는 “거의 시키는 것만 하려고 하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뛰는 것이니만큼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데 요즘 청년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잘못됐다”고 의식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과거 자신의 연습 시절을 회상하며 “우리 때는 경쟁심 같은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새벽에 훈련을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뛰려고 몰래 몰래 나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시키는 것조차 하기 싫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목표의식의 부재’로 분석했다.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헝그리 정신이 생기지 않고 훈련하는 방식도 예전과 달라지는 것 같다는 뜻이다.

▲ 마라톤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봉주 선수. ⓒ천지일보(뉴스천지)

◆ 태극마크 달고 뛴 애틀랜타 올림픽 때가 최고의 마라톤

이봉주 선수는 41번의 마라톤을 완주하며 가장 환희를 느낀 순간을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라고 회상했다. 그는 “올림픽은 아무나 뛰는 것이 아니고 한 나라에서 3명 밖에 못 나간다”며 “처음에 운동을 시작한 것도 올림픽에 태극 마크를 달고 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자족할 줄 아는 그에게는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이라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여느 경기보다 최고로 환희를 느낀 대회가 됐다. 하지만 그에게도 인생의 전부였던 마라톤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1992년도였다. 슬럼프에 걸려 6개월 동안 고생하며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는 그때가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말한다.

마라톤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43번 도전해서 2번 기권한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웬만하면 포기를 잘 안하는 성격인데, 많은 고통이 따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말을 아꼈다.

◆땀이 없다면 대가도 없는 것이 마라톤

이봉주 선수가 바라보는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요행을 바랄 수도 천성만 믿고 있을 수도 없는 운동이다. 그는 “마라톤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땀의 대가가 고스란히 나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나는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며 “핸디캡을 뛰어넘어야 하니 남들이 한 번 할 때 두 번을 하고 더 많은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이 ‘정신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자신만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그를 지탱해준 신조는 너무나 평범했다. ‘자만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신념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인생은 ‘마라톤’과도 같았다. 그는 마라톤과 인생을 이렇게 비유한다. “인생과 마라톤은 둘 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뛰는 경우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뛰는 경우도 있지만 몸이 좋든 나쁘든 끝까지 뛰어서 완주해야 한다”며 “골인 지점까지 들어와야 무엇인가가 이뤄지는 것이 마라톤과 인생의 공통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 41세의 나이로 41번의 마라톤을 완주하고 은퇴를 선언한 이봉주 선수. 두 자녀를 둔 한 가장으로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표정이 밝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훈련지에서 첫째 애 진통 소식에 식은 땀 ‘뻘뻘’

이봉주 선수가 은퇴를 하며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가족이다. 운동 때문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 점을 가장 미안해 했다.

특히 두 아들인 우석 군과 승진 군이 아직은 어렸기에 그 마음이 더했다. 이봉주 선수는 “아빠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지금까지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해준 것이 가장 걸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운동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린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경상도로 전지훈련을 가려는 찰나 서울에서 아내가 첫째를 낳는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애기 낳는 것을 봐야 하는데’ 하는 다급해진 마음에 그가 처음으로 과속을 했다. 경상도에서 대전 톨게이트까지 시속 150km로 달리고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겨우 병원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서 보니 해산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혼자 짐을 다 꾸려서 입원해 고생하는 아내를 보고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는 한 가장으로서의 에피소드다.

◆가족이 있어 사는 게 사는 것 같다

이봉주 선수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도 그를 행복하게 한다. 두 아들의 이야기를 할 때 이봉주 선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음을 멈출 줄을 몰랐다.

큰 아들 우석 군은 매일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조른다고 한다. 그는 “얼마나 귀여운지, 매일 뛰자고 졸라서 시합을 하면 거의 져주는 편이다”며 “아이들 기를 살려줘야 하니까”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두 아들의 아빠가 된 이봉주 선수는 “둘째(승진 군)는 애교가 많아서 운동을 갈 때나 출근 할 때가 되면 뽀뽀 해줘야 한다면서 달려와요”라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효자인 그는 가족 중 어머니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시합을 뛸 때마다 제일 마음 졸이고 있으신 분이 어머니시다”며 “뛰는 것은 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어 안타까운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에 달려가서 보고 싶어도 나중에 봐야 하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셔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고 전했다.

◆은퇴 후 소년소녀가장 돕기에도 힘쓸 것

이봉주 선수는 은퇴 후 지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소년소녀가장돕기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생각이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서 도움 줄 것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는 그다.

그는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재능이 있어도 발휘를 못하는 어린 선수들을 향한 애정이 남달랐다. 인재를 키워야 육상도 발전된다는 생각에 인재 발굴과 육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육상계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현실성 있는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에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도 낙후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되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그는 고향에 대한 애착심도 남다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향 공주에서 훈련을 한다. 이봉주 선수는 “나중에라도 고향을 위해서 할 일이 있으면 고향에서 일을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며 “지도자가 되든지 육상에 관련된 일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육상계를 위해서 뛰겠다고 다짐하는 그가 지금껏 걸어온 마라톤 인생의 결과보다 은퇴 후에 더 나은 피날레로 장식해주길 기대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