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 양력이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이다. 개화바람이 불면서 조정에서 세력(歲曆)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연호도 양력을 세운다는 의미로 건양(建陽)이라 했다. 나라에서는 양력을 내세웠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음력을 따랐다. 양력을 쓰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음력 대신 양력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다. 설날을 구정이라 하여 못 쇠게 하고 양력 1월 1일인 신정을 지내도록 했다. 관공서도 신정에는 쉬도록 했다. 공무원들은 할 수 없이 신정을 쇠고 차례를 올리긴 했으나 보는 눈이 두려워 쉬쉬 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신정을 왜놈 설이라며 무시했다. 일제는 우리 전통 설을 없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했고, 우리 백성들은 이에 저항해 신정을 거부했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서도 일제 잔재를 떨치지 못한 공무원들이 신정을 강요했다. 국민은 공무원 설이라며 신정을 거부했다. 이중과세 문제가 불거지고 전통 설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국민의 요구가 컸지만, 일제 때 일본 유학을 다녀온 총리가 앞장서 묵살했다. 그럼에도 전통 설을 쇠는 국민이 더욱 늘어났고 정부도 할 수 없었던지 민속의 날이라 하여 전통 설을 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신정’ 대신 고유의 이름인 ‘설날’로 불리게 된 건 1995년이다. 설날의 수난사다.

설과 함께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것은 추석이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에선 십오야(十五夜)라 한다. 십오야 밝은 달이, 어쩌고 하는 노래에 나오는 바로 그 십오야다.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 보름을 말하는데, 저녁 석(夕) 자를 붙인 것은 밤하늘 달구경이 최고라는 뜻일 것이다.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갚이’가 ‘가위’로 변한 것이고 ‘한’은 크다는 뜻이므로 ‘크게 갚는다’는 의미다. 농사가 잘 되게 해 준 하늘과 조상에게 크게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자연과 조상을 숭상하고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씨다.

육당 최남선은 추석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릇마다 근심 대신 기쁨이 소복하게 담기니 원체 한 번 놀 만한데 술을 먹기에 밤이 짧을까, 춤을 추기에 땀을 걱정할까, 돌아다보면 헐떡이던 여름이요, 내다보면 웅크릴 겨울이니, 이때를 놀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랴.”

하지만 추석이든 설이든 명절이 결코 반갑지 않다는 사람들도 많다. 며느리 증후군이라 뭐다 해서, 얼굴도 모르는 시댁 조상 제사 지내느라 생고생을 해야 하는 주부들이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시월드’니, ‘시’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도 싫다는 세상이고 보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대놓고 시댁을 조롱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여성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여자나 남자나 똑같이 대우받고 존중받는 세상이 돼야 하고, 그런 세상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여자들만 죽어라 고생하는 것 같으니,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남자들도 똑같이 부엌일 하고, 시댁 처가 똑같이 챙겨서, 여자들이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명절날 귀갓길에 부부끼리 물어뜯고 싸우거나 이혼하지 않으려면, 여자들 원한을 품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한가위 보름달은 변함이 없지만, 인심은 달라졌다. 죽은 조상보다 살아 있는 아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 그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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