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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대결로 흐른 南北
사회·문화 이질화 심화
마음 속 ‘또 다른 철책’

후유증·부작용 우려 커
비정부 단체 활동 중요
“정치 벽 넘어 협력해야”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북이 갈라진 이후 60년이 훌쩍 지났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마음의 장벽도 높게 쌓였다. 마음을 담는 그릇인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된 것이 그 예다. 정치적인 통일만으로는 통일 후유증이나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남북 간에 사회·문화적인 교류를 통해 마음의 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북 관계에서 사회·문화적 교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군사적인 대결구도와 함께 깊어진 언어·사회·문화적 이질화는 남과 북을 가르는 또 하나의 철책이기 때문이다.

최근 남북 정세를 보더라도 그간 중단됐던 사회·문화 교류에 시동이 다시 걸리는 분위기다. 최근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한 정부는 인도적 지원과 민간 교류의 문을 개방하고 있다. 북한도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치·경제에 편중된 접촉

이 같은 움직임은 정치 분야에서 막힌 담을 비정치 분야에서 먼저 허물어보자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남북 관계를 보면 사회·문화 교류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게 사실이다. 6.25 전쟁 이후 남북 접촉은 주로 정치·경제 분야에 머물렀다.

통일부 남북 협력사업 승인 현황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13년까지의 민간 경협과 개성공단 등 경제 분야 사업은 총 623건 중 467건을 차지했다. 반면 사회·문화 분야 사업은 156건에 불과했다. 특히 이 분야 교류는 1991~2001년 23건, 2002년 7건, 2003년 13건, 2004년 16건을 기록한 뒤 2005년 47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06년 26건, 2007년 19건으로 주춤하더니 2008년 3건으로 급감했다. 2010년과 2011년은 각 1건이었다.
사회·문화 분야는 남북회담 주제에서도 후순위로 밀렸다. 1971~2013년까지 이뤄진 630건의 남북회담 중 사회·문화 분야는 54건에 그쳤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같은 기간 정치 분야는 249건, 경제 분야는 128건에 달했다.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것은 북한 당국의 개입으로 지목된다. 순수한 목적에서 진행되는 문화 교류라고 하더라도 당국의 감시 속에 이뤄지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사회·문화 교류 역시 움츠러들었다.

◆“문화 등 비정치 교류 필요”

이런 상황에서 사회·문화 교류는 박근혜 정부 들어 강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독일 ‘드레스덴 선언’ 당시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통일의 한 축으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남북한 주민이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치적 목적의 사업, 이벤트성 사업보다는 순수 민간 접촉이 꾸준히 확대될 수 있는 역사 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8.15 경축사에서도 환경, 문화, 민생 분야에서 우선 협력할 것을 북한에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못지않게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비정부 민간단체가 비정치 분야에서의 교류를 활발히 할수록 통일의 여건도 그만큼 성숙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통일진흥원 양태호 원장은 “정치적으로는 남북이 극과 극이기 때문에 문화·종교·학술·과학 등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먼저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며 “시민단체나 구호, 인권단체, 종교단체 등 각종 민간단체가 먼저 들어가서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北민간 통제가 걸림돌

한계론도 없지는 않다. 북한 체제 특성상 아무리 민간 차원의 비정치 분야 교류라고 해도 북한 당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민주화위원회 홍순경 위원장은 “현재의 북한 체제가 민간 차원의 모든 활동을 막고 억제하고 있다”며 “문화나 경제적 교류가 정치적 통합보다 선행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정치 문제에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 교류 활동가들은 민간 교류의 폭을 꾸준히 넓혀가는 게 최선책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설용수 회장은 “북한의 권력과 인민을 분리하려면 인도적인 측면에서 정치의 벽을 넘어 끝없이 교류해야 한다”며 “민간 교류 협력은 정부가 알게 모르게 묵인하면서 폭을 넓혀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통일도 민간 역할 컸다”

사회·문화 교류의 중요성은 독일 통일의 사례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통일연구원 김경웅 원장은 “독일 통일 전에 엄청난 양의 사회·문화 교류가 있었다”면서 “양측 간 문화협정 체결 이후 상호 TV 시청이 허용되면서 사실상의 통일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민간 부문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운동이 독일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김 원장의 분석이다. 그는 “교회나 엔지오 등에서 탈동독인들과 구동독 주민들을 변화된 세계에 동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우리가 통일을 내다보면서 참고해야 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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