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일본에서 저희들끼리 피 튀기며 싸우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통일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다. 그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고 할 만큼 성격이 괄괄하고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목표에 지장이 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목을 날렸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안하무인격이었다. 부하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그의 부하 중에 아케치 미츠히데가 있었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엘리트 의식이 강하고 자부심이 넘쳤지만, 오다 노부나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다. 노부나가는 그를 걸핏하면 대머리라고 놀렸고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꾸짖고 모욕을 주었다.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미치히데는 성 쌓는 일을 계기로 앙갚음을 결심한다. 결국 그의 반란으로 노부나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혼노사의 변’이다.

노부나가의 또 다른 심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는 원래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장돌뱅이로 근근이 살아가던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잘 돌아가, 노부나가의 환심을 얻고 수하로 들어갔다. 마굿간지기와 부엌지기로 있으면서 더욱 신임을 얻어 마침내 최측근이 되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히데요시 역시 노부나가로부터 숱한 놀림을 받았다. 노부나가는 그를 이름 대신 아예 원숭이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하지만 꾀 많은 히데요시였다. 원숭이라 불리면서도 허허 웃어 넘겼고 노부나가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꾀를 내어 도움을 주었다. 그는 상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채워주는 능력이 있었다. 결국 혼노사의 변을 일으킨 미츠히데는 히데요시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로써 히데요시의 세상이 열렸다.

미츠히데와 히데요시의 운명을 가른 것은 모욕에 대한 대응 방식이었다. 귀족 출신인 미츠히데는 상관의 모욕을 견뎌내지 못했다. 자존심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심복하지 못했고 모욕을 들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했다. 반대로 하층민 출신인 히데요시는 모욕을 오히려 즐겼다. 상관이 원숭이라 부르는 것은 자신을 편하게 대하고 믿기 때문이라 여겼고 그것을 기뻐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바닥을 거쳤기 때문에 그 정도 모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히데요시의 예를 들어,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모욕을 견디는 일이야말로 출세를 위한 기본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욕을 잘 견딘 히데요시는 결국 과대망상에 빠지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 백성은 물론 왜놈들까지 무수히 목숨을 잃게 했다. 모욕을 견뎌낸 그 성정이 정상이었을 리 없다. 쥐같이 반짝이는 그 눈으로, 모욕을 견딘 만큼, 세상에 해악을 끼친 놈이다. 그러니, 모욕을 견디는 일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모욕을 견디는 것도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겪어야 할 과정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출세는 고사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모욕 견디는 일은 식은 죽 먹기로 여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모욕 주는 일은 없도록 하자. 모욕이 부메랑으로 되돌아 와 내 목을 후려칠 수도 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모욕 견디는 일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모욕은 앙심을 품게 하지만, 칭찬과 격려는 존경과 신뢰를 불러온다. 모욕보다는 칭찬과 격려가 훨씬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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