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가르쳐야 할 종교가 지도자들의 비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패한 종교는 재정비리, 성추행, 학력비리, 파벌 싸움, 교회 세습, 정교유착 등 각종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종교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중심으로 부패한 종교계의 실태를 진단한다.

 

▲ 교황이 거하는 바티칸 베드로대성당은 중세교회 비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건축 당시 교황은 바티칸 대성당을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품으로 건축하고자 했다. 실상은 교황 자신의 영광을 위해 건축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각종 탈취가 자행됐다. 이때 출현한 ‘면죄부’는 중세교회 부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사진은 지난 2월 바티칸 대성당에서 열린 추기경회의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추기경들 모습. (사진출처: 뉴시스)

[기획] 부패한 종교, 이대로 좋은가? ③천주교 지도자 도덕성 논란

중세 가톨릭교회, 헌금강요로 얼룩

온갖 비리 판쳐…성전건축만 몰두

산 자‧죽은 자 모두 속인 ‘면죄부’


개신교, 종교개혁 후 가톨릭서 분리

가톨릭 비판하지만 비리는 ‘똑같아’

“진리의 목자로 새 시대 열리는 때”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한국교회의 모습은 중세 가톨릭교회를 그대로 닮았다.”

성경엔 무지하고, 성직자 비리, 헌금강요, 정교유착 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의 모습이 500년 전 중세교회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중세교회 비리상징, 바티칸 대성당‧면죄부

이른바 ‘암흑시대’ ‘지성의 야만시대’라고 불렸던 중세 시대는 성직자들의 부정부패, 비리의 정점에 있었다. 권력과 야합하고 성직매매가 공공연히 자행됐으며 독신이어야 할 성직자들은 음란할 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았고, 교황청은 수탈의 총본산이었다. 진리에는 무지하면서 외형적 확장과 성전건축에는 열을 올렸다.

사실 현재 교황이 거하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은 중세비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당시 교황은 바티칸 대성당을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품으로 건축하고자 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다. 재정조달을 위해 이런저런 이유로 헌금을 강요했다. 실상은 교황 자신의 영광을 위해 건축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각종 탈취가 자행됐다.

이때 출현한 ‘면죄부’는 중세교회 부패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면죄부’를 사면 과거의 죄뿐 아니라 미래에 지을 죄도 미리 사함 받는다고 했다. 면죄부를 죽은 사람에게도 팔았다.

죽은 사람도 그의 이름으로 돈을 내면, 돈주머니로 ‘땡그랑’하고 돈이 떨어지는 순간 그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성경도 귀하고, 글도 잘 몰랐던 신도들은 교황의 말을 그저 ‘하나님 말씀’으로 믿던 터라 이런 황당한 말에 현혹됐다.

그러나 면죄부를 판매하던 시기 가톨릭 내부에서는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11세기말에 시작돼 361년간이나 치러졌던 십자군 전쟁은 ‘신의 이름’을 빙자해 치러졌지만, 사실상 교황권 강화를 위해 성지 예루살렘을 차지하려고 시작된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이 참패로 끝나면서 중세교회는 ‘신의 대리자’로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황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때마침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근대식 인쇄술은 ‘까막눈’이었던 사람들을 깨우며 르네상스를 확대했다.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오직 성경’

부패의 극단을 보여준 면죄부 판매는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됐다.

1516년 루터는 “면죄부는 거짓말로 백성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두 차례에 걸쳐 강하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난했다. 1517년 2월 루터는 면죄부의 해악을 설교하고, 각 도시의 주교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한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들에게 면죄부가 교회에 미치는 심각성에 관해 토론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교황청의 눈치를 보느라 편지에 답한 주교도, 토론에 참여한 교수도 없었다. 루터는 선동이 아닌 토론에 의해 중세교회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부패한 중세교회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만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독일의 비텐베르크의 슐로스교회(Schloss Kirche) 정문에 ‘95개조의 논제’라는 제목으로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는 반박문을 게시했다.

루터는 반박문을 통해 ‘온전히 회개하고 오직 성경대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교황이 ‘술김에 한 일’이라며 비꼬았던 루터의 이 반박문은 중세 로마 가톨릭에 대한 선전포고가 되면서 종교개혁의 봉화를 드는 사건이 됐다. 또한 전 유럽으로 번져가며 단순한 종교개혁이 아닌 사회개혁 운동이 됐다.

가톨릭 개혁 외쳤던 개신교의 부패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 개혁을 외친 루터 지지자들은 독일과 북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루터파 교회는 10여 년에 걸친 투쟁 끝에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아 프로테스탄트교회, 즉 지금의 개신교가 됐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주창하며 출현한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을 사실상 이단시 하고 있다.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이미 끝난 종교로 보고 있다.

그 근거로 “가톨릭교회는 선한 행위나 기부와 같은 공덕을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면서 비성경적 가르침과 이교도적 행위를 꼽는다. 로마 가톨릭의 이런 구원론은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설교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는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인간적으로 볼 때 그렇게 겸손하고 청빈하며 귀감 되는 삶을 사는 교황일지라도 그 역시 가톨릭의 제도와 비성경적 교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며 “‘무신론자도 선행만 하면 천국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고 설교한 적이 있는 그의 구원관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중세 가톨릭교회를 비판하고 출현한 개신교지만 오늘날의 모습은 중세 가톨릭교회를 그대로 닮아 있다. 성직자 비리는 물론 외형적 성장과 성전건축에만 열을 올리고 갖은 모양으로 헌금을 강요하며, 입으로는 부패를 한탄하면서도 권력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까지 그대로다.

특히 장로교가 우세한 한국교회는 이단논란까지 극심하다. 가톨릭교회 역시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 부패하고 문란했던 중세 가톨릭 수사들의 모습은 은연 중 지속돼 사치와 연이은 성추문, 동성애로 논란이 되고 있다.

한편 종교계의 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신천지예수교 이만희 총회장은 ‘진짜바로알자 성경과 신천지’ 공식카페를 통해 “기독교계에 만연한 부패는 오늘날이 성경에서 말한 종말 즉 종교의 말세임을 말해준다”면서 “진리가 있는 목자를 통해 부패한 종교계가 끝나고 새 시대가 열리는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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