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참전유공자 김명진 옹.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 6.25전쟁 참전유공자 김명진 옹

훈련받지 못한 16살 소년, 강제로 전쟁터 내몰린 현실
배고픔·두려움에 잠 못 이뤄… 동료죽음 슬퍼할 틈도 없어
생지옥 같은 전쟁 안 끝나… 한반도통일 국민의 힘으로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김명진(80, 참전유공자) 옹. 이름 석 자일 뿐인데 그의 눈은 이미 충혈돼 있었다. 64년이 지난 세월에도 6.25전쟁의 참상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감춰뒀던 피눈물을 모두 토해내듯 겪었던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월백 부대에 소속돼 전투에 참여했던 학도병이었다. 지금은 6.25 참전 국가유공자로 있지만, 1950년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16살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총을 처음 잡아본 그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북한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이 전쟁에 끼어들었다. 연합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리며 1.4후퇴를 감행해야 했고 병력이 급했던 상황에서, 16살의 학생도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중공군이 너무나 많이 내려오다 보니 병사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군사 훈련은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끌려오다시피 징집대상이 돼 전쟁터로나가 백령도, 연평도 등지를 방어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짧은 훈련을 받고 바로 전투에 투입돼 정신이 없었습니다. 배고프고 굶주리고 춥고….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고, 전쟁을 겪지 않으면 이해를 못 합니다.”

◆“참혹한 전쟁은 절대 해선 안돼”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매우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잔인한 참혹 그 자체였다. 수많은 전우가 전사하는 걸 보면 눈이 뒤집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을 향해 총탄을 쏘아 댔다고 증언한 김명진 옹은 “전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인터뷰 내내 되풀이했다.

하루하루가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지독한 전쟁은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주지 않았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쉼 없이 전투가 이어졌다. 1953년 7월 27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총성이 그쳤다.

60여 년이 지난 시간에도 김명진 옹은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전우들,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현충탑, 통일전망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젊은 세대는 전쟁의 참상을 모르고, 국가나 학교에서도 이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참혹한 전쟁을 멈추기 위해선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독일의 통일도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남북이 대화하고 교류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하루빨리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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