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한옥은 단층으로 이루어진 횡축 건축물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대부의 집에는 영역 구분이 있었다. 행랑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사당이 하나의 전형적인 집의 구조였다. 집으로의 완성은 4구역의 설정과 배분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 건축물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개념이 없어지고 하나의 공간에 작은 수의 가족이 살아가기 때문에 다양한 구조를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옥의 위대함은 자연과 인공을 절묘하게 절충해 주변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에 있다. 한옥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산세와 들과 강, 그리고 함께 마을을 이루고 있는 다른 집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 소통과 친교의 집이다. 한옥은 인간의 집이되 자연과 함께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한옥은 주장하지 않는다.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순도순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인위 속에 자연이 발을 들여놓도록 몸의 한 부분을 내어놓은 점이다. 한옥은 2층이 없다. 예외적으로 궁궐이나 사찰 또는 누각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드문 경우다. 2층으로 된 사찰이나 궁전도 속을 들여다보면 단층구조임을 알게 된다. 안에는 단층으로 천정까지 뻥 뚫려 있다. 한국인은 지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2층은 지기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단층을 선호했다. 그리고 인위적인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건축물은 횡축에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그만큼 인위를 최소화하려는 심성이 반영된 건축물이다. 인위성을 줄이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건축물을 짓지 않고 독립된 건축물을 한 공간에 여러 채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느슨하게 대충 지은 듯한 한옥은 철저하게 계산된 역학과 완벽한 설계에 의해 완성된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터를 잡고 기둥과 보를 세우고, 도리를 올리는 일이 조금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는 장인의 기예가 들어가 있다. 과학적인 설계에 의해 짓는 집이다. 철저하게 공식적으로 설계된 집이다. 하지만 자연을 받아들이는 면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기둥을 세울 때는 나무가 자란 대로 위와 아래를 그대로 찾아서 세운다. 나무가 자란 방향도 맞추어 짓는다. 이를 어기면 나무가 뒤틀어진다. 나무는 살아 있는 생명체였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의 자리를 찾아가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나무를 나무가 자란 상태의 반대로 세우면 기둥이 돌아간다. 나무가 자란 그대로의 방향과 위·아래를 맞춰야 제대로 된 집이다.

한국인의 기질이 잘 나타난 건축물은 거칠어 보이는데 이것은 자연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지은 건물에 자연물을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 인공의 건축물이나 조형물에 자연적인 것을 가져다 놓으면 언뜻 보기에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이를 즐긴다. 얼마 전 제주도에 일이 있어 갔다가 한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주인이 한옥 짓는 법을 배워서 부부가 함께 지은 집이었다. 거실을 들어서서 놀랐다. 거실 한 면에 자리 잡은 기둥이 원목의 형태로 그대로 있었다. 껍질만 벗겨서 다듬었을 뿐 큰 가지와 나무가 살아 있을 때의 나무 외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주인에게 사연을 물었다. “왜 자연목을 그대로 집안에 기둥으로 사용하셨지요?” 남자주인이 말했다. “저 기둥을 세우고 나서야 집이 완성됐구나 싶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랑주기법이다. 우리나라만이 가진 건축기법 중 하나다. 놀라운 자연과의 친화다. 도랑주는 원래의 목재 형태 그대로 사용하는 기둥을 말한다. 자라던 그대로의 목재를 껍질만 벗기고 큰 가지도 부분적으로 살려서 사용한다. 한국의 한옥에서 자연적인 미를 살리려는 의도에서 채용한 기법이다. 큰 마음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자연의 받아들임이다. 구례 화엄사의 구층암에 가면 도랑주의 절정을 보게 된다. 개심사의 심검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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