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세월호 참사가 장기적으로 표류하며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일련의 병영 내 군 기강 사고로 전 국민적인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말 모처럼 짜릿하게 웃고 환호했다. 12세의 남자 리틀야구 선수들이 29년 만에 세계 정상을 차지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 라마데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결승에서 미국의 일리노이주 대표팀을 8-4로 꺾고 1985년 대회 이후 우승을 차지해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례적으로 TV에서 새벽 경기를 생중계 했으며, 신문 등 주요 언론과 인터넷, SNS 등에서는 리틀야구팀의 우승 소식을 톱뉴스로 다루었다. 아버지나 형님뻘 되는 어른들도 끌어들이기 힘든 스포트라이트를 어린 리틀야구 선수들이 한몸에 받았다. 마침 회사에서 여름휴가를 얻어 밤새 리틀야구팀의 경기를 지켜 본 필자의 큰 아들은 경기 내용을 생생하게 전하며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리틀야구 선수들이 보여준 풋풋한 젊음과 투지, 사심없는 동료애와 깨끗한 매너 등은 혼탁한 이기주의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점차 잃어가는 어른들의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리틀야구 선수들의 우승을 보면서 중학교 때 배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가 생각났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 때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의 시였다. 튼실한 나무도 여린 새싹부터 시작된다는 평범한 사실에 비추어 어린이들의 환경과 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이번에 세계 정상에 오른 우리 선수들이 장차 훌륭한 어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하자면 솔직히 자신이 서지 않는다. 국내 리틀야구의 열악한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리틀야구 구장은 7개 밖에 없다. 이러한 빈약한 상황에서 이번 같은 성과를 올렸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1984, 1985년 대회를 연속 우승할 때도 국내 리틀야구의 여건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야구장은 장충구장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선수들은 야구를 향한 열정과 집념으로 척박한 여건을 감내해야 했다. 세계 정상을 밟았던 리틀야구 선수 출신들 가운데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한 이는 넥센 심재학 코치 등 몇 명에 불과했다. 훈련 미비와 부상, 경기경험 부족 등으로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어른 선수로 완성된 이가 극히 적었던 것이다.

이번 대회서 준우승에 그친 미국팀만 해도 풍부한 인프라와 선수 자원을 보유해 성인팀에서 세계 최강국의 내실있는 경쟁력을 일찍이 갖춰놓고 있다는 평가이다.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마다 리틀야구장이 있고, 어린 선수들과 전문 코치들이 초보적인 야구 실력을 착실히 쌓는다. 코치들은 경기 매너와 자세, 유니폼 입는 방법 등 개인의 인성에서부터 야구 역사와 흑백 선수들의 인권 등에 대해 자세한 지도를 아끼지 않는다. 대회 기간 흑인 여성으로 사상 처음으로 셧아웃, 완봉승을 거두며 미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 커버 스토리로 소개된 13세 흑인 소녀 모네 데이비스가 발굴된 것도 잘 짜여진 리틀야구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 리틀야구팀에 연속 패배한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도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탁월한 환경을 자랑하고 있다. 웬만한 소도시에는 리틀야구장이 갖춰져 있고, 많은 선수들이 녹색의 잔디 위에서 기량을 다듬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야구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풀뿌리 야구’인 리틀야구의 열악한 여건부터 점차 개선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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