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맡을 수밖에 없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국민공감혁신위원장), 박영선 위원장은 수락연설에서 눈물을 흘리며 독배를 마시는 심정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난파선처럼 좌충우돌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을 추스르고 제1야당의 새로운 혁신 에너지를 끌어내기에는 박 위원장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독배를 드는 모습, 딱 그대로였다. 그래서 비대위체제가 출범할 즈음 다수의 전문가들은 박영선 비대위체제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았다. 최소한의 역할, 말 그대로 위기국면을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 정도만을 주문했다. 다음 전당대회에서 제대로 된 지도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만 구축해 달라는 정도의 기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위기관리커녕 더 큰 위기를 자초
우려했던 대로 박영선 비대위체제는 출범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좌초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갖고 왔다가 당 안팎의 반발에 부닥친 이후 굴욕적인 재협상에 들어갔지만 그 합의안마저 퇴짜를 맞고 있다. 역대 여야 협상에서 이런 경우는 사실상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명색이 비대위원장이 협상에 이어 재협상까지 했던 합의안이 당 안팎의 반발을 사고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새정치연합은 어차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같이 가기로 방향을 잡았다. 박영선 위원장도 직접 유가족들과 길거리에서 고락을 같이하며 결의를 다지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누구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양측의 공감대 위에서 여야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그런 기본마저 놓치고 말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수용할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용으로 덥석 합의부터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재협상 합의안마저 유가족들이 압도적 다수로 거부한 것은 박영선 위원장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비대위체제가 아니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한다. 정치력도, 신뢰도, 더욱이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소통도 제대로 못하는 지도자라면 이미 그 역량이 드러난 셈이다. 새정치연합은 비대위체제마저 다시 비상체제로 가야 할 운명이다.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여야는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해서는 논의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는 특별법을 갖고 와서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박영선 위원장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누구 말을 듣고 협상장에 나간 것일까. 특검 추천 문제를 놓고 단 한 번도 유가족들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니? 협상장의 분위기를 긴장감 있게 지켜봤던 많은 사람을 정말 허탈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쯤 되면 답은 간단하다. 그만 내려오시라고, 이대로는 더는 안 된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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