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겉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서로 윙크를 주고받으며 함께 가는 파트너 정당.’

양당제라는 정치 제도의 폐해를 생각해본다. 양당제는 쉽게 말해 거대 정당이 2개인 경우다. 백과사전에서 나열하고 있는 좋은 점은 이렇다. 의회와 행정부에서 양당 간에 토의와 결정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여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면 내각 구성에 힘을 받고 법안 심의도 능률적·영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국민들의 선택이 2개의 정당에 한정돼 있으므로 다음 정권 담당자를 선택하기 쉽고, 책임소재가 분명해 책임정치와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찮다. 국민의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거나 각 계층의 다양한 의사를 대변하기 어렵고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거대 정당은 주로 특정한 이념이나 특정 계층을 대변하는 성격을 갖는다. 즉 보수와 진보이다. 또한 소선거구제 등과 결합돼 일방통행식으로 흘러가기 쉽다. 한국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 여야 짝짜꿍 동반 행보일 뿐이다. 실제로 입법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두 당뿐이다. 당장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대치 상황이나 공천을 둘러싼 당내 파열음만 봐도 그렇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지역주의 패권정당 체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야는 서로 함께 가는 ‘동지’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악용한 ‘방탄국회’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문제가 또 불거졌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 불거진 것도 아니다. 여야가 애써 함께 깔아뭉갰던 것일 뿐. 여야 공히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같이 ‘쉬쉬’ 하며 뒷돈 챙기기를 묵인해준 것에 불과하다. 진작부터 입법적인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지금까지 여야가 따로 똑같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했다. ‘한병권의 느낌표’에서 지난해 9월 10일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목이 쉬도록 외쳐댔건만 결과는 공허한 목소리에 그친 것만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정치인 출판기념회 뭉칫돈, ‘뇌물’이 아니고 무언가.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한 시중은행에 개설한 개인금고에 들어 있던 1억 원 중 3800만 원 가량을 지난해 9월 출판기념회 당시 유치원총연합회 측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고 검찰이 수사 중이다. 신 의원은 지난해 4월 유치원 경영자의 지위 승계를 쉽게 해주는 쪽으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냈고, 사립유치원의 차입 경영을 가능토록 하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에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유치원총연합회가 3800여 만 원을 회원들 이름으로 쪼개서 축하금 명목으로 냈다. 같은 당 신계륜 김재윤 의원도 한국종합예술학교와 관련한 법 개정을 둘러싸고 검찰조사를 받았다. 또 다른 야당 의원 10여 명은 치과의사협회로부터 ‘네트워크 병원’ 운영금지를 둘러싼 입법 대가로 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모두 검은돈 모금 수법으로 청원권을 활용한 셈이다.

이른바 ‘실세’로 통하는 정치인은 출판기념회 한 번에 10억 원은 거뜬히 모은다고 한다. 한 해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모금 한도액이 1억 5000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다. 돈이 얼마나 걷히는지는 의원 본인 외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정확한 내역을 선관위에 보고할 의무도 없고 액수도 공개되지 않는다. 유관기관과 기업에서 내는 돈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비용에 전가되니 간접세나 마찬가지다. 100만 원 이상 고액 축하금도 많다. 선거나 국정감사, 정기국회를 앞두고 출판기념회 자리를 만들기만 하면 거액 모금이 가능하다. 악취 나는 ‘묻지마 후원회’인 셈이다. 신 의원의 경우 이 뭉칫돈을 여의도 한 은행에 대여한 개인금고 속에 그대로 보관해왔다고 한다. 결국 지역구 관리를 위해, 혹은 공개적인 지출이 곤란한 용도에 쓰고자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오세훈법’ 이후로 자금모금 새 통로로 버젓이 악용되고 있으니, 향후 검찰 수사 결과가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과거의 적폐’를 언급할 때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관(官)피아’와 ‘정(政)피아’ 척결이 이뤄질까,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까 하는 기대감이 내심 컸다. 하지만 개혁적인 시스템 고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런 가운데 ‘여의도’는 자정노력은커녕 국민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듯하다. 그 저변에는 두 거대 정당이 양당제라는 미명하에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듯한 묘한 연대감이 깔려 있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고 했던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음지에서 검은 돈을 뜯어내는 이런 비신사적인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합법을 가장한 ‘정(政)피아’ 뭉칫돈, 이대로 좋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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