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표작

정채원(1951~ )
 

다시 오면 너를 여기서 데리고 나갈게
약속하고 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리는 창녀처럼
폴더 속에 갇혀
하루
한 달
한 해

마지막 문장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평]
사람은 하루에 오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만 생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란다. 이 많은 생각 중에 정말로 좋은 생각이 일어나서, 그 생각을 꼭 쓰고 싶어서 메모를 해놓지 않으면, 이내 그 생각은 나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음이 일반이다.
한 번 떠난 생각은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다시 오면 너를 여기서 데리고 나갈게’라고 ‘약속을 하고는 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리는 창녀처럼’, 기다리고 기다린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있어 이러함은 더욱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디 오지 않는 것은, 그래서 미발표로 남는 것은 한 줄의 생각, 한 줄의 시 구절뿐이겠는가. 떠나간, 그래서 놓친 기회는, 돌아보면 우리네 삶에 또한 몇 번 있었으리라. 그때 네가 이렇게 대처를 했으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면 아쉬웠던 일들. 그러나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아쉽고 아쉬워도. 그래서 인생은 어느 의미에서 미발표작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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