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새누리당 압승으로 끝난 7.30 재보선이 정치 지형을 흔들고 있다. 필자는 이번 재보선에서 세 남자를 주목하고 싶다. 우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새누리당 ‘자력우승론’과 들뜬 분위기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바 있다. 재보선 승리를 이끌었다고 해서 당청관계에 ‘각’을 세우거나 ‘뉴 스타’의 탄생에 빌미를 제공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애써 몸을 낮춘 채 노련한 현실감각이 담긴 차분한 수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 일요일인 3일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소집한 그는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불러 손으로 여러 차례 책상을 치며 질타했다. 일견 ‘쇼맨십’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시의적절한 대응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필자가 90년대 취재기자 시절 만난 김 대표의 모습은 과묵하고 무뚝한한 편이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함께 식사하는 도중에도 농담을 별로 하지 않는 등 언행에 신중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친화력이 약하다는 평을 듣지 않는다.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을 압도한 것은 그간 초·재선 의원들과 물밑에서 끈끈한 유대를 만들어왔음을 보여준다. 대선주자로서의 그의 장점은 첫째 민주화 투쟁 경력에, 상도동 계열의 막내뻘이라는 혈통이다. 여기에 부친이 이룬 전남방직이 광주광역시에 소재했다는 점도 지역대결 구도에서 이점이 된다. 지난해 모친상을 당하자 묘소를 전북 익산에 모시기도 했다. 그의 과제는 정치감각에 비해 콘텐츠가 다소 약하지 않느냐는 점, 태생이 부잣집이라는 집안 내력에서 빚어진 귀족형 이미지를 앞으로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될 것이다. “열린 우리당은 열린 당인지 닫힌 당인지…”

묵직한 저음에 간결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촌철살인의 성명을 발표해 인기를 끌었던 대변인이 있었다. 이정현 의원. 그는 여권의 불모지인 전남 순천·곡성 보궐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돼 대이변을 일으켰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예산폭탄’을 외쳐댄 그는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새 역사를 썼다. 그는 동국대 4학년 때 “정치 좀 똑바로 하라”고 써서 구용상 당시 민주정의당 의원에게 보낸 6장짜리 편지 덕에 정치에 입문했다. 필자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나라당 대변인실 한쪽켠에서 논평 자료를 만드는 한 명의 젊은 실무 당료에 불과했다. 당내에서는 전략기획통에 ‘아이디어맨’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원래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줄 잘 서서 잘 나가는 당협위원장도 아니었다. 원래 성실 근면이라는 측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지만 치열한 정치판에서 그의 등용은 운 좋은 케이스로도 여겨진다. 2004년 17대 총선 직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수행할 대변인이 마침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대언론 창구역 ‘대타’로 나섰다가 박 대표 눈에 들어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돼 실세인 ‘박근혜의 입’이 됐으니.

박근혜 후보가 2007년 대선 후보경선에 패한 뒤 눈물을 줄줄 쏟은 그와 그 해 겨울 단둘이 저녁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뇌리엔 온통 ‘박근혜’ 밖에 없어 보였다. 이때의 그는 자신을 대원수로 전격 발탁해준 유방에게 끝까지 충성한 한신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자신의 참모로 와 일해 달라는 다른 정치인들의 요청을 모두 사양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그에게 덕담을 건넨 적이 있었다. 필자가 현재 역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전제, “재미삼아 살펴봤는데 앞으로 운세가 좋으니 먼저 전라도에서 배지를 달아 공고한 지역 구도를 깨고 2017년을 도모해보라”고 하자 피식 웃기만 했다. 크리스천인 그로서는 난데없는 미래학에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018’로 시작되는 옛날 핸드폰을 아직도 사용한다. 이는 그가 옛정을 쉽게 잊지 않으며 인맥관리에 충실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의 과제는 무엇보다도 참모형 이미지를 불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의건 타의건 그가 언제까지나 ‘왕의 남자’로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몸집을 불리기에 따라서는 대선에서 ‘호남의 노무현’으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다크호스로 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7.30 재보선 출마 요구를 애써 외면했기에 오히려 주목을 끈 사람이 있다. 그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 지원유세는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그는 금배지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사 퇴임 직후 소록도에서 잠시 봉사활동을 하던 기간에 당의 ‘십고초려’를 받은 그는 끝끝내 출마를 사양했다. 백의종군이 국민에게 ‘대인(大人)’다운 행보로 비쳐질지, 아니면 ‘소심함’으로 평가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순수함’과 ‘고지식함’이라는 상반된 두 평가가 상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어둠속에 잠복한 불씨와 같다. 비록 지금 활활 타오르는 횃불은 아니지만 향후 불붙을 잠재성은 크다고 하겠다. 아무튼 3인의 향후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린다. 그중에 과연 누가 민(民)의 마음을 뭉클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승전은) 천행이었다. 그리고 그 천행은 울돌목 회오리가 아니라 백성들이었다”고 말했던 ‘명량’의 성웅 이순신 장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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