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북좌익척결단, 자유민주수호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이석기 선처 탄원서 제출 종교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염수정 추기경, 자승 총무원장 등 4대 종단지도자를 비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내란혐의자 이석기의 선처를 호소한 종교계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4대 종단장, 이례적 탄원서 제출… “경악스럽다” 비난
보수단체, 연일 규탄성명·집회… 반대 서명운동 벌여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염수정 추기경, 자승 총무원장 등 4대 종단 지도자들이 내란혐의로 재판 중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보수단체들이 연일 규탄 성명과 집회를 열고 종교계를 몰아붙이고 있다. 일부 교계에서도 뜻을 같이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보수성향의 사회단체와 교계단체들은 여세를 몰아 ‘이석기 선처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여 재판부에 제출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종교계와 보수단체 간 갈등으로 확산할 조짐까지 보여, 이석기 선처 논란이 또 다른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한국종교계를 대표하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4대 종교 최고지도자들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지난달 말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에 의해 알려지며 촉발됐다.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종교지도자는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천주교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스님, 성공회 김근상 주교 등이다. 이들 인사들의 정치적 메시지와 행동은 종단 안팎으로 영향력이 큰 게 사실이다.

◆종단지도자 “화해·통합 기여 기회달라”

이석기 의원의 선처를 호소한 이들도 보수단체들의 거센 저항을 분명히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같은 자충수를 왜 두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진보성향 단체가 아닌 각 종단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은 이례적이어서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던 염수정 추기경이 자필로 탄원서를 제출해 파장이 더 크다.

염수정 추기경은 최근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사건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을 만나 면담한 후 직접 탄원서를 냈다. 염 추기경은 “얼마 전 ‘국회의원 이석기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의 가족들을 만났다”며 “그들은 많은 고통과 아픔을 지니고 한 자식의 어머니이며 한 아내의 남편이 가정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화해와 통합, 평화와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청한다”는 탄원서를 냈다.

앞서 지난 2월 가족대책위가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탄원서를 재판부에 내 줄 것을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 요청했다. 하지만 일부 회원교단에서 반대로 KCRP 차원의 탄원서 제출은 무산됐다. 이후 각 종단과 개인별로 탄원서 제출 움직임이 있었다.

불교계에도 뜻이 전해졌다. 지난 6월 초 탄원서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을 통해 총무원장 자승스님에게 전달됐다. 또한 가족대책위가 7월 초 염수정 추기경의 자필 탄원서를 조계종에 보내 동참해 줄 것 요청했다.

자승스님은 탄원서를 통해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어리석은 갈등으로 국력을 소진하기보다 서로 간의 이해와 포용이 허용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7명의 피고인들에게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호소했다.

◆보수단체 “이석기 탄원 너무도 잘못된 것”

소식을 접한 보수시민단체들은 잇따라 종교계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 명동성당 등에서 규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종교계의 ‘이석기 탄원’은 너무도 잘못됐다”며 재판부에 제출한 서명운동까지 시작했다. 이 서명운동에는 노재봉 전 국무총리,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 서경석 목사,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등 개인과 보수단체 등 3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통해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내란음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석기 등 7명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 제출 소식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며 “개인적인 사안이라면 반성이 없더라도 종교인이 선처를 청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석기의 경우는 절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부가 이러한 (종교계의) 탄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을 재판부에 간곡히 탄원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도 29일 종교지도자들을 겨냥해 주요일간지에 ‘이석기 선처 탄원에 호국영령들은 통곡한다’는 광고 성명을 게재했다.

◆교회언론회 “법치주의 근간 흔들어”

앞서 지난달 28일 개신교 내 보수단체를 대변하는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가 논평을 내고 이번 논란에 대해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교회언론회는 “도움을 요청하면 손 내밀어 주는 것이 종교인의 사명은 맞다”며 “하지만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의 형평성과 법률의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탄원 행위는 자칫하면 법 적용에 혼란을 가져오고, 사회적 분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이번 일로 종교가 지나치게 국가에 관여한다는 비난을 살까 매우 염려된다”고 우려했다.

이석기 의원 등 7명은 내란음모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했다. 종교 지도자들의 탄원에도 검찰은 최근 항소심에서 1심에서와 같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가 오는 11일 어떤 최종 판결을 선고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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