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흥행을 예고하는 영화 명량(鳴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놓쳐선 안 될 메시지가 있다. 임진왜란 6년째 되던 해, 전란기간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누명을 쓴 후, 죽음을 겨우 면하고 권율의 휘하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 하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된다. 당시 장군 앞에 놓인 것은 희망 잃은 백성과 패잔병과 같이 전의를 상실한 소수의 병사와 낡은 배 12척이 전부였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은 왜군에게 다대포와 칠천포에서 대패해 해상권을 상실한 상태였으며, 이후 복직한 장군에게 임금은 조선 수군의 전력을 우려하자 ()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고 비장한 각오가 담긴 장계를 올리게 된다. 또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말에서 짐작하듯이, 병사들과 함께 결사항전과 임전무퇴 했고, 탁월한 지혜와 지략을 동원해 천혜의 지형 울돌목(명량해협)을 이용해 위난에서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12척의 배로 당시 동양 최고의 장수 구루지마가 이끄는 330척의 왜군을 격파시킨 명량대첩은 세계전사에 길이 남을 해전이요 기적이요 불가사의한 일이라 해도 무방하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장군이 지인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곡창지대인 호남이 뚫리면 나라의 명줄이 끊긴다는 사실을 잘 아는 장군은 부하들과 울돌목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왜군과 싸워 이겼다. 나라는 장군을 버렸지만, 장군은 나라를 구했다. 임금은 물론 조종대신들은 당리당략에 물들어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와 밥줄이 더 소중하던 시절이었다.

임금은 무능과 함께 측근의 소리에 귀가 막혔고, 백성의 소리와 충신의 소리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되었으며, 오직 내 앞길을 막는 방해꾼이요 잡음일 뿐이었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신뢰라는 말이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신뢰라는 단어는 지난날 대선에 임한 박근혜 후보의 아이콘이었다. 신뢰와 함께 또 하나의 아이콘이 있었다면 불통이었다. 이 때 국민들은 불통이라는 부정적 측면보다 신뢰라는 긍정적 측면에 점수를 주며 대선에서 승리를 안겼다. 그리고 그 신뢰는 깜깜한 세상에 국민들의 작은 등불이자 희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과 등불이던 신뢰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불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아가 그 불신은 신뢰가 아닌 현 정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어느 순간 변해버린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하던가. 어쩌면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 실상은 불신이 근본이었음에도 국민들이 무지해 분별력을 잃었었는지 모를 일이다.

더듬어 볼 것은 지난 4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세월호 사고, 하지만 세월호는 사라지고 그로 인한 구원파와 그 실세 유병언 전 회장과 관련한 수많은 얘기만 온 나라를 가득 채웠다, 억측이 또 다른 억측을 낳으며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부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검경수사 발표와 국과수에 의해 DNA검사와 두 번째 손가락과 치아를 증거로 유 전 회장의 시신임을 증명해 발표해도 국민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근래에 와선 국정원 개입설까지 나옴으로 불신의 늪은 깊어만 가니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하기까지 하다.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호가 침몰한 바로 이 자리 진도해협, 그 지근거리에 있는 울돌목에선 500여 년 전,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사실이 왠지 여운을 남기며 오버랩 되고 있다.

영화 명량을 통해 살펴봤듯이, 암울한 시대를 맞을 때는 그 이면에 측근과 당쟁이 극에 달했고, 그로 인해 백성과 충신의 소리에 귀를 막았으며, 그 결과는 늘 백성들을 외세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게 했으니 지난 역사가 증명한다.

지난 월드컵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있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선수와 감독’, 타이틀이 말하듯이 국민과 국가를 대표하는 조직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조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돈과 명예와 인기로 인해 눈이 멀고 교만해져 본분을 망각하고 국가 대표조직을 개인의 의리를 자랑하는 사조직화 함으로써, 결국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들을 분노케 한 사실을 분명히 목도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어도 대한민국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유병언과 세월호를 맞바꾸려 하고 있으며, 어떻게 덮을까, 어떻게 감출까, 어떻게 넘어갈까에만 여념이 없어 보인다. 세월호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으며, 그러하기에 세월호는 절대 세월과 함께 또 다시 가라앉혀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은 관련 희생자들과 유가족과 기타 관련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이기에 반드시 그 원인과 과정과 현실을 정확히 밝힌 후, 그 터 위에 거듭나는 나라와 국민이 돼야만 한다.

구한말의 역사가 안전(眼前)에 재연되는 이 때, 지정학적 위치로 다시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새삼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 슬기로운 민족으로 다시 나야 한다.

다시 찾아 온 위기의 대한민국호, 측근과 의리의 역할로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장수와 그와 함께할 12척의 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량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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