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

이수익(1942~ )

나는 멍텅구리
입은 길게 찢어지고, 눈은
찌부러진 듯
모호하고
머리통은 세상살이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그렇다면 그것은 멍텅구리
때 없이 실실 웃어제끼는
내게는 어울리는 보통명사 멍텅구리
바보처럼 천치처럼 내가 나를 내팽개치는 말
그 곳에 그대로 갇혀 있고 싶어

[시평]
어느 누가 자신을 멍텅구리라고 스스로 자청하고 싶은 사람 있겠는가. 세상살이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머리통으로 때 없이 실실 웃어제끼는, 그런 멍텅구리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질세라 머리를 들이밀고, 머리를 돌리고, 웃어야 할 때, 웃지 말아야 할 때를, 마음으로 이리저리 재가며 이리저리 빠르게 눈 돌려가며 살아감이 우리네 일반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그러나 삭막하기까지 한 삶의 한복판에서 이리 부딪치고. 또 저리 밀리면서 살다가 보면, 차라리 멍텅구리가 되어 바보처럼, 천치처럼 자신을 내팽개치고는, 세상 사람들이 관심조차 두지를 않는 ‘멍텅구리’에 그대로 갇혀 살고 싶을 때가 때때로 없지 않아 있다.
‘멍텅구리’, 못생긴데다가 굼뜨고 동작이 느려서 아무리 위급할 때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할 줄 모르는, ‘멍텅구리’라는 이름의 바닷물고기마냥, 이것저것 사리 판단하지 않고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가장 속 편한 삶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살이에서는.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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