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현 양의 어머니 신명섭(49,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씨가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깃발을 어루만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세월호 100일’ 끝나지 않는 기다림
팽목항 떠날 수 없는 실종자 가족

매일 아침밥·음료 준비해
현장에 밥상 차린 어머니
“이거 먹고 빨리 나와야지”

딸이 보고 싶은 아버지
매일 수색 현장에 나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생떼 같은 멀쩡한 자식을 잃었으니…. 살아가면서 가슴에 뭍은 우리 딸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살아야죠. 찾기만 하면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난 19일 아침 자원봉사자가 식사를 다 차렸을 때쯤 실종자 황지현 양의 어머니 신명섭(49,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씨가 한국재난구호에서 운영하는 팽목항 가족식당에 들어섰다.

신 씨는 사고 이후 매일 아침밥과 김, 과자, 음료 등을 준비해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가져다 놓는다. 지현 양이 밥을 먹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빨리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거 먹고 빨리 나와야 하는데…. 3반 아이들은 다 일찍 나왔는데 지현이만 늦게 나오는 거에요. 지난번에 도보 행진팀이 들고 온 깃발이 제일 처음 꽂혀서 남아 있는 사람 중에 제일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오네.”

▲ 지현이가 밥 먹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빨리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신 씨는 매일 팽목항 방파제에 아침 밥과 김, 과일 등으로 밥상을 차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신 씨는 정성스러운 손길로 잘차린 밥상을 뒤로하고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이 노끈으로 묶여 있다. 그는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깃발을 어루만지면서 “우리 다윤이도 나와야지. 우리 선생님도 나오셔야죠”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신 씨는 지난 100일여간 노란 리본에 지현 양의 이름을 쓰고 또 쓰고, 묶고 또 묶고를 반복해왔다.

신 씨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던 사고 전날인 15일 저녁 6시께 안개 때문에 못 떠날 수도 있다는 통화가 지현 양과 신 씨의 마지막 통화였다. 당시에만 해도 지현이가 이렇게 돌아오지 못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 김, 콩비지찌개, 계란찜 등 한식을 좋아했던 지현 양.

“다이어트를 한다는 이유로 라면을 못 먹다가 이제 먹을 시기가 됐는데 결국 못 먹었어요. 그게 뭐라고…. 마지막일 줄 알았으면 먹여서 보내는 건데.”

지현 양은 결혼 7년 만에 만난 귀한 딸이다. 요즘 청소년들처럼 화장도 한 번 안 했다. 옷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도 없었다. 조용한 성격인 지현 양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였다. 용돈도 함부로 쓰지 않았던 지현 양은 명절에 받은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5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만들었다. 신 씨는 대학생이 되면 이 돈으로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지현 양 아버지 황인열(51) 씨는 매일 수색 현장에 나가는 바지선을 탄다. 그나마도 태풍이 오거나 파도가 심해 들어가지 못하면 황 씨는 며칠이고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기다리는 생활을 반복해왔다.

▲ 신 씨가 지현이를 향해 쓴 메시지. ⓒ천지일보(뉴스천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황 씨는 매일 혼자 넋두리를 한다. 지현이 사진이 담긴 목걸이를 목에 걸어도 보고 지현이 방에도 걸어보지만 그리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는 지현이가 생각날 때마다 그동안 못 다한 말을 편지에 기록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바다 근처도 싫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바다에 빠져 있으니까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 아직 칠흑 같은 바다 밑에서 나오지 못한 내 자식, 내 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은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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