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마친 후 정치권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새누리당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TK)지역에서는 “헛다리 짚었다”는 말도 들리는데, TK 국회의원들이 당권 주자 가운데 서청원 의원을 공개 지지한 데서 나온 말이다. 선거인단 15%를 차지하는 이 지역에서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 지도부에 입성한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박창달 전 의원이 지역대표로 전당대회에 나섰지만 지역표의 도움을 받지 못해 꼴찌에서 두 번째 득표에 그쳤다.

지난번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통해 확인된 TK지역의 영향력은 모래알처럼 흩어졌으니 초라한 신세가 됐다고 푸념이다. 당권 경선 과정에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김무성·서청원 양강 구도 속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선택했다. 알려진 바로는 대구지역에선 친박계 결집을 위해 서청원 의원을 지지했고, 경북은 포항을 중심으로 해 일부 의원들은 김무성 의원을 밀었던 것인데 양분됐지만 반은 회생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도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김무성 대표가 전당대회 직전에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TK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기용할 의사가 있다”고 한 약속 이행을 바라는 눈치다. 표로 지원하지 않은 채 TK 사무총장 기용에 대한 약속 지키기만을 기대하고 있으니 신뢰로 봐서도 상식 밖의 요구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 대표 입장에서는 그러한 TK 의원들의 이중모션이 달갑지 않을 테고 사전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다.

요즘 정치권의 판도를 보면 아무래도 TK지역이 PK(부산·경남)에 비해 약세가 뚜렷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변혁이 대세가 됐고, 새누리당이 김무성 체제로 들어서면서 정치적 화두가 변함에도 TK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지지도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전국의 다른 지역의 평가와는 달리 유독 대구·경북의 지지도에서만 긍정평가(64%)가 부정평가(24%)보다 배 이상 나오고 있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대구라서 이 지역 국회의원이나 주민들이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지지가 남다른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무조건적 지지나 관심은 타 지역 주민들에게는 TK사람들의 편협성을 탓할 빌미가 될 수 있다. 사실에 부합되는 객관적인 판단은 이성을 지니고 평균점에 접근하게 마련인데, 정치인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까지도 정치적 견지에서는 ‘묻지마’ 성향이 확연하니 이런 무조건적 지지 현상이 과연 옳고 좋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역사에서도 나타나지만 사상, 주의나 사실에 따른 일편단심(一片丹心) 처세, 곧은 기개는 인정받는다. 하지만 흐름의 회돌이 속에서 적응되지 못하면 뒤처지거나 역풍 맞는 게 다반사로 있어왔다. 변화점을 읽지 못해 엇박자 선택을 했다면 어느 정도 불편은 스스로가 감수해야 할 자신의 몫임에도 TK지역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구동성이 푸념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낙후된 지역이 변함없다고 하면서도 지역에서 대통령이 났으니 보상받을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가진다.

‘낙동강 오리알’이란 말이 있다. ‘낙동’은 상주에서 어원이 비롯되는 바, 상주의 옛 지명이 상락(尙洛) 또는 낙양(洛陽)으로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에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낙동강 중상류의 유일한 섬인 하중도에 천 년 묵은 금개구리가 살고 있었는데, 새가 잡아먹으면 봉황으로, 뱀이 잡아먹으면 용이 된다는 것을 백로와 뱀이 우연히 알았다. 그 후 둘은 서로 찾아 나섰다가 백로가 금개구리를 잡아먹고 봉황이 되어 날아갔고, 슬픔에 젖은 뱀이 낙동강으로 내려오다가 이무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 소문이 퍼져 나가자 전국에 있는 학과 오리, 꿩들이 봉황이 되고 싶은 마음에 하중도로 몰려들었으니 섬은 그야말로 철새의 천국이 됐다. 얼마나 복잡한지 산란 시에 둥지를 잡기 위해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학의 둥지에서 꿩 병아리나 오리새끼가 나오기 일쑤였다. 이렇게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홀로된 새의 새끼들을 ‘낙동강 오리알’이라고 불렀다 한다. 다시 말하면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척박한 환경에 처해진 신세라는 의미다.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끝나자 여권의 본향이라 자처해온 TK지역은 ‘낙동강 오리알’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쌓였다. 그동안 편안함에 익숙해져버린 지역 정치인들이 풍향계를 잘못 읽은 결과로 보인다. 전국 ‘제3의 도시’ 대구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뒤처진 지역발전상을 보였고, 정치세력조차 PK에 밀려난 현실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프라이드로 버텨온 TK사람들이 이제는 ‘이대로 쭉’이란 뚝심 갖기엔 힘이 빠져버렸다. 변화 없이는 지탱마저 어려운 변혁의 시기에 봉황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이무기조차 없는 곳이다. 누구를 원망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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