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그동안 코트에서 혼신의 힘으로 땀 흘린 여러분들 모두가 진정한 승리자들입니다.”
14일 김장실 대회 조직위원장의 폐회 선언과 함께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총 16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에서 특히 눈길을 끈 한국 선수가 있었다.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도 올스타 베스트 파이브에 선정되며 축제를 더 빛나게 한 오동석. 한국 휠체어농구의 ‘김승현’ ‘날쌘돌이’ 등으로도 불리는 토종 가드 오동석은 대회 총 8경기에서 112득점, 35리바운드, 26어시스트, 스틸&굿디펜스 10개를 기록했다. 한국은 대회 8강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역대 최고성적인 6위를 기록하며 축제를 더 빛나게 한 데는 1m 70㎝의 단신 오동석이 고비 때마다 터뜨린 슛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소게임에서 터진 3점 외곽슛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재빠른 돌파에 의한 골밑 슛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베스트 5’ 상은 한국에서 나온 최초의 기록.
초등학교 5학년 때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마비(척수장애)가 된 오동석은 17세 때 동네 복지관에서 농구공을 잡고 휠체어농구의 매력에 매료됐다.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친 오동석은 ‘에이스’ 김동현과 더불어 한국 휠체어농구의 히어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7일 A조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오동석의 해결사 본능이 빛났다. 한국이 8강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간 것은 오동석 덕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한 189㎝의 장신 김동현이 집중마크를 받자 마치 프로농구의 공격형 가드를 보는 듯 오동석이 펄펄 날며 경기장에 모인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날 오동석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양 팀 최다인 28점을 기록했다. 여기에 어시스트 2개와 스틸 2개를 더했다. 4쿼터에만 8점을 퍼부은 오동석의 플레이에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혀를 내둘렀다. 경기 후 한사현 대표팀 감독은 “오동석 선수가 고비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철저히 잘 해줬다”며 “작년 아시아-오세아니아 대회 때도 베스트5로 꼽힐 정도로 근성과 승부욕이 강한 선수다”고 칭찬했다.
무엇보다 체격과 힘, 스피드가 좋은 유럽 팀들을 상대로도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펼친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동석 역시 “막상 붙어보니 해볼 만한 팀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진 기량 대로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고 열흘간의 대회를 돌이켜 봤다. 그는 “김승현 선수나 전태풍 선수 비디오를 자주 보고 있다. 특히 김승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동석은 “대부분 국내파인 우리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과 맞부딪쳐 보면서 기량이 많이 올라온 것 같다”며 “무엇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모두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용, 조승현, 김영무 등도 똑같은 일등공신이었다. 외국 선수들이 프로인 데 비해 우리는 김동현을 제외하면 모두 아마추어. 예컨대 김호용은 성남의 한 휠체어 제조공장에 다니면서 휴가를 얻어 수원 무궁화전자 코트에 나가 연습해온 ‘주경야독파’. 연습량과 큰 경기 경험이 많이 부족한 데도 강한 승부근성과 투혼으로 이를 보완한 것이다.
이번 대회는 풀어야 할 숙제도 남겼다. 세계적 강호들과 원정 경기에서 대등하게 겨루려면 슛 정확도를 높이고 패스능력과 전략 전술 등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 주전멤버와 백업멤버 간 기량차도 줄여 긴 대회 기간 중 체력 안배에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코앞에 닥친 아시안게임에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후원금 모금 등에 총력전을 펼친 김 조직위원장은 15일 해단식에서 “지금은 월급이 지급되는 실업팀이 서울시청 하나 뿐인 열악한 현실”이라며 “앞으로 장애인농구협회장 임기 동안에 실업팀 1~2개를 더 창단하기 위해 후원업체를 찾아 뛰어다녀보겠다”고 말해 선수들을 기쁘게 했다. 변효철 대회집행위원장은 “국제패럴핌픽위원회(IPC) 위원장 필립 크레이븐 경과 같은 국제적 인사들이 이번 대회를 대단히 성공한 대회로 평가하고 있어 그간 땀 흘려 준비한 보람이 있다”며 “휠체어농구가 흥미진진한 프로스포츠의 하나로 발전할 가능성을 연 대회라는 의미도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한조 사무총장도 “외국 선수들 중엔 외팔이나 조막손 선수들도 대표선수로 선발돼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생각보다 훨씬 재미난 경기였는데 언론 등에서 더욱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관중이 더 많았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애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휠체어농구. 무엇보다도 실업팀이 더 늘어나 선수들이 마음 놓고 운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장애인들에게 희망, 열정,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장애인 스포츠 활성화의 큰 계기가 될 것이다. 휠체어농구가 인기를 모으면 선수층이 한층 두터워질 것이다. 그러면 단순한 재활훈련 차원을 넘어 실업팀에서 선수로 뛸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선수·지도자의 해외 진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진정한 영웅인 휠체어농구선수들과 땀흘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조직위 관계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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