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도교 이순종 여성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천도교 이순종 여성회장
日탄압 교세 약화 ‘구심점’ 역할
“남북통일·세계평화 힘 보탤 것”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3.1독립운동을 이끈 천도교는 일제의 탄압을 가장 심하게 받았습니다. 수많은 남성 신도들이 투옥되고 모진 고초를 겪었죠. 남은 여성 신도들의 역할이 점차 커져 갔으며, 마침내 1924년 4월 5일 의암 손병희 성사의 부인 주옥경 사모를 중심으로 ‘천도교 여성회’가 창단돼 조선 여인들의 의식을 깨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해로 포덕(창도) 154주년을 맞은 천도교는 한국 종교계를 대표하는 7대 종단 가운데 하나로, 대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웃종단에 비해 월등하게 남녀평등의 사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여성 교역자들이 종단 안팎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여성 신도들을 이끌고 있는 이순종(75) 여성회장을 만나 ‘천도교 여성회’의 사상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민족종교 천도교는 1860년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창도(당시 교명 ‘동학’)했다. 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에 의해 천도교로 교단명이 바뀌었다. 천도교는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당시 90% 이상의 교인이 살고 있었던 북한의 교단이 상실되며 교세가 줄어들었다. 현재는 10만여 명의 신도가 천도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중 여성 신도들의 비중이 크다.

이순종 회장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자주 다녔다. 그의 부모가 신실한 개신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20대 초 천도교의 경전과 교리를 접하며 천도교인의 길에 들어선다.

“일제의 종교탄압으로 천도교의 교세가 많이 약했습니다. 3.1운동과 독립운동 등으로 남성 신도들이 감옥에 투옥되다 보니 여성들이 교단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손병희 성사님의 부인인 주옥경 사모가 중심이 돼 여성회가 창단됐습니다.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제가 마치 살아 숨 쉬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주옥경 초대 회장은 전국을 순회하며 천도교 교회의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전국 지부에 야학을 개설하고 문맹 퇴치, 의식주 생활개선, 독립운동, 교양·문화·음악·재봉 교육, 교리연구강좌 등을 실시해 교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 창립 90주년을 맞은 여성회는 여성 천도교인들의 목소리와 뜻을 모아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봉사 활동뿐 아니라 생활 환경운동 등 대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도교 여성회 여성운동의 효시”

지난 3월 25일 창립 90주년 기념식에서 이순종 회장은 천도교 여성회가 여성운동의 효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천도교는 여성운동의 효시입니다. 서방에서도 여성운동이 시작하기 전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은 자신의 집에 있던 두 여종을 딸과 며느리로 삼으면서 여성인권을 살리는 데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는 여성회의 사상과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천도교 여성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동덕여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오늘날 여성운동가들이 천도교의 여성운동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교재를 정리 중이다. 또한 천도교 여성 위인들의 생애와 업적을 중심으로 여성 인물사를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그는 여성회 창립 100주년을 향하고 있다. 숙원사업인 여성회관 건립과 여성 지도자 양성을 위해 교육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교단을 중심으로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천도교의 훌륭한 교리, 정신은 아직 세상에 덜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여성회 회원들이 각자가 주인정신을 가지고, 한국 근대사의 변화를 가져온 초대 여성 회원들의 그 정신을 이어받는다면 이 시대 여성운동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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