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월드컵 축구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삼바 축구’ 브라질이 안방에서 독일에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이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준 경기였다. 월드컵 개최 반대 시위와 엉성한 대회 준비에도 불구하고 자국 팀의 거침없는 질주로 기분이 좋았던 브라질 국민들은 상심이 클 것이다.

골이 많이 나와 가장 재미있는 월드컵이라는 소리가 나왔지만 우리들로선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16강 진출을 기대했지만 별 볼일 없었고, 밤을 새워 응원한 우리들도 풀이 죽어 버렸다. 동네 치킨집도 재미를 보지 못했고, 큰돈을 들여 중계를 한 방송사들도 큰 손해를 보았다.

우리 팀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단 맛에 취해 다부지게 준비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말 잘 듣는 어린 선수들만 안고 가다 보니 경험 많고 노련한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히딩크가 출신을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선수를 뽑은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통 큰 리더십이 아쉬웠다. 축구협회의 체계적인 지원도 부족했다.

일본도 한심했다. 초밥을 진열하듯 질서정연하게 잘라 패스를 하고 약속된 플레이를 하는 게 원래 일본 스타일의 ‘스시 축구’다.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민족이라 그런지, 몸싸움도 싫어한다. 송종국 안정환 해설자도 “일본팀은 거칠게 다뤄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라울 곤잘레스도 “몸싸움이 두렵다면 그 후에 판단력도 없다”고 했다. 어쨌거나 숙명의 라이벌이라는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체면을 구겼다.

스포츠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탈정치화 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빈부 격차와 정치적 불안 등 브라질의 산적한 자국 내 문제가 축구 열기에 묻히고 말았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처형과 체포 구금 등으로 3만 명의 희생자를 낸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도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국 팀이 무조건 우승하라고 명령했다. 아르헨티나는 우승했고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지식인들은 냉담했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정권은 1980년 ‘미스 유니버스’, 이듬해 ‘국풍 81’을 열어 의도적으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프로야구, 프로축구, 배구와 농구 씨름 등 준프로리그를 출범시켜 대대적인 스포츠 육성 정책을 펼쳤다. 절전의 이유로 금지되었던 야구 야간 경기도 부활했다.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컬러 TV로 중계되면서 국민들은 현실을 잊고 스포츠에 빠져 들었다.

세계 각국의 국민들이 자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웃고 우는 동안 뒤에서 큰 웃음 짓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FIFA 관계자들이다. 역대 월드컵 중 가장 큰 수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수익과 그에 따른 검은 거래가 횡행하는 곳이 바로 FIFA다. 이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카타르가 자국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FIFA 관계자에게 500만 달러의 뇌물을 줬다는 보도가 터져 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 봤자 그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곰은 재주가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고 했다. 월드컵 열기 뒤에 감춰진 눈물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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