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문화와 방송 이창기 대표(왼쪽)가 지난달 24일 대부도에서 시니어영상제작 동아리 회원에게 영상 촬영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문화와 방송 이창기 대표

[천지일보=이경숙 기자] “빌게이츠도 부럽지 않을 특수기술을 보유했지만 사고 후 컴퓨터 업계 일인자가 되겠다는 꿈은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기술을 그대로 묵혀 두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촉망받던 엔지니어에서 재능기부자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사)문화와 방송 이창기 대표를 만났다.

반도체 장비 기술자였던 이 대표는 약 20년 전 이스라엘에서 기술교육을 받던 중 유일하게 일반 빛을 레이저로 변환시키는 특수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력 전수를 요청받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을 유출해선 안 된다는 회사와의 각서에 의해 거절했다. 그만큼 그가 가졌던 기술력은 국내에서 유일했다.

300억 원 정도의 반도체 장비 문제를 3건이나 해결하는 등 엔지니어로서 촉망받던 삶을 살던 이 대표는 1993년 1월 명절을 하루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날따라 예감이 좋지 않아 속도를 30~40㎞로 줄여 운전했는데 강변북로에서 다른 차와 정면충돌한 것이다.

그는 목숨은 건졌으나 손끝 움직임이 중요한 반도체 관련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 대표는 낙심하지 않았지만 분명 넘어야 할 산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이었다.

“소위 말하는 사회적 약자가 되고 나니 예전에 당하지 않았던 설움도 많이 당했죠. 한 번은 추운 겨울 10분 거리도 채 안 되는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데 나를 그냥 지나치고 앞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만 태우고 가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목발을 짚고 몸이 불편하니 태우지 않더라고요. 마음이 많이 아팠고 화도 났습니다.”

▲ (사)문화와 방송 이창기 대표(왼쪽)와 시니어영상제작 동아리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대부도에서 갈매기를 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대표는 사고 후 10여 년간을 직접적으로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인터넷 음악방송 운영과 네이버 카페에 시를 게재하는 등의 생활만 지속했다. 그러던 중 그는 ‘내가 가진 기술을 이렇게 썩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제2의 삶이 시작됐다. 그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컴퓨터 기술을 가르쳐 합당한 보수를 받으며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이에 이 대표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영상편집 등의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이 대표는 장애인들이 배움을 즐거워하며, 점차 의식이 깨어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 대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행하는 차별에 대해 “기관에서 장애인 강사에게는 강의료를 주지 않고 비장애인 강사에게는 강의료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적이 있었다”며 “또한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돈을 적게 주고 일을 시키려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즉 동일한 실력을 가지고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적 행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 대표가 가르침에 열정을 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대표는 “장애인들도 누군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에만 익숙해 하지 말고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사)문화와 방송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중증장애인과 어르신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로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이가 단체에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장애인 영상 공모전이나 노인 영화제 등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의 바람은 그가 가진 재능만큼이나 많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말로 자기가 못한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서 뭔가 해나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 지켜봐주고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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