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철리(哲理)다. 이 철리를 말해주듯 국제 정세 역시 변화무쌍하다. 역사의 시간에서 ‘현상유지(Status quo)’라는 것은 그야말로 촌음(寸陰)이고 촌각(寸刻)에 불과하다. 평화 시(時)일지라도 항시 국가 간에는 초한지에 나오는 유방과 항우의 싸움, 삼국지가 엮는 유비 조조 손권의 패권 다툼과 같은 복잡다단한 스토리가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파괴와 살육의 전쟁만이 건곤일척의 싸움이 아니라 그거 역시 본질에서 현재와 미래의 실존 확보를 위한 건곤일척의 싸움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국제 정세는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요동치고 변화하는 정세가 역사를 관류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정상이다. 따라서 중국이 급속히 강대국으로 굴기(崛起)하고 일본이 헌법 해석을 달리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선 일, 미국이 힘이 빠져 세계 패권적 지위를 잃어가는 한편 러시아가 그 복잡한 정세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실속을 챙기면서 재기를 꿈꾸는 작금의 격동하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새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것도 없다.

지구상에는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되는 역사의 역동성에 휘말리지 않는 무풍지대, 말하자면 우주 공간에서 두 전체 간의 인력과 원심력이 딱 균형을 이루는 칭동(秤動)점, 이른바 ‘라그랑쥬 포인트(Lagrangian point)’는 없다. 그렇기에 국제 정세에 거센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일 때의 조선(朝鮮)말처럼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오불관언하는 쇄국(鎖國)이나 가물거리는 촛불과 같은 약소국의 처지로 중·일·러의 눈치나 살펴야 했던 어설픈 줄타기 정도로는 나라의 평안을 지켜낼 수가 없었다.

이웃 나라가 새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추구할 때 경각심을 갖고 그 흐름에 맞추어 대비해야 했다. 나라의 문을 열면 절대 왕권 유지와 썩은 기득권층이 누리는 당장의 부귀공명에 위협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지만 그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불행의 그림자가 너무나 길다. 일제 침탈의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의 원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에서 상대가 움직이면 예민하게 반응하며 같이 움직여주어야 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정세의 변화에 둔감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한 발 더 나간다면 변화에 수동적이기만 해서는 안 되며 국익에 맞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역이 돼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한국 국빈 방문이 동북아와 국제 정세에 던지는 파문이 크며 세계의 예민한 관찰 대상이다. 한중 양국 관계는 덩샤오핑이 불을 지핀 중국의 개혁 개방 시책에 따라 미미한 경제 교역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중국이 과거의 미국 일본 유럽의 자리를 대신하는 한국의 최대 교역국, 인적 교류국이 됐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관계가 전 분야로 확대 발전돼 친밀도를 더해간다. 적어도 지금은 안보에서 미국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 파트너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안보와 우리의 통일에서 중국이 갖는 역할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 머지않아 미국의 중요성과 대등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중 관계의 발전 잠재력은 무한히 크다 할 것이며 그렇게 보는 것은 양국의 공통적인 전략적 관점이기도 하고 역사적 필연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중 양국 간 친밀화의 농도가 짙어가는 것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신경을 날카롭게 세운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면서 한국이 자신들과 멀어져 중국의 팽창에 대항하는 대중(對中) 공동 전선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점이 한국을 꽤 성가시게 할 것이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에게 부닥쳐야 하고 극복해야 할 일이다. 한중 양국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안보 및 통일을 위해 양국 관계의 심화 발전이 불가피한 흐름이라면 한미 동맹이나 미국과 일본이 소망하는 미국을 매개로 하는 한미일 삼각 동맹의 의타적인 성격이 짙은 틀에만 우리가 갇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 더 대외 관계에서 자주(自主)적인 입장이 되도록 서둘러야 하고 그것은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를 상대할지라도 똑같이 적용돼야 마땅하다.

더구나 미국 일본이 우리에 요구하는 것은 중국과의 대결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때 중국에 대한 악역(惡役)이기 쉽다. 강대국의 습성으로 보아 그들은 실리(實利) 앞에서 어떤 흥정을 벌일지 어떤 꿍꿍이를 꾸밀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더욱이 대외 관계에서 우리의 주관과 줏대를 새롭고도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새 친구를 얻었다고 옛 친구를 섭섭하게 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옛 친구를 섭섭하게 하지 않는 방법이 꼭 우리의 주장과 주관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흐물흐물 하다가는 새 친구 옛 친구 다 잃을 수 있다. 국가 관계에서 어떤 국가가 받는 대접은 그 나라가 가진 만큼의 경제역량이나 안보 역량에서 더도 덜도 아닐 만큼 냉엄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떤 국가의 발언권이나 주장이 먹히는 것도 꼭 그 만큼이다.

따라서 새 친구 옛 친구를 막론하고 선린우호를 다져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국력을 강하게 하고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외교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이도 속아보고 서러운 일을 숱하게 겪었다. 그것도 새 친구, 옛 친구 모두로부터다.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 속에서 살면서 그 같은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힘이 강한 나라는 속일 수도 없지만 속여 봤자 후환만 따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속이지도 않지만 속임을 당하지도 않는 강하고 당당한 나라가 돼야 한다. 그것이 새 친구, 옛 친구 모두와 잘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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