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한중 간에는 보이지 않는 밀월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밀월이 진행되면서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6개월여 만에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방한한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는 물론 미국을 위시한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채 요동하고 있으며, 예기치 않은 지형변화까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시 주석의 방한을 놓고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당연히 북한이며, 이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지 벌써 3년이 지났으나 중국 최고지도자의 방북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스커드 계열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로켓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으며, 로켓을 쏜 지 하루 만인 30일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금지, 아시안게임 등 남북 간 교류와 접촉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취소, 상호 비방 및 심리전 중단이라는 엉뚱하기까지 한 특별 제안을 내놓는가 하면, 이번엔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북핵 포기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개꿈이라며 좌충우돌과 함께 횡설수설하는 것은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군사합동훈련 취소 등 남측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해온다는 것은 시 주석 방한에 대한 보복형 추가도발을 염두에 둔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군의 철저한 대비가 요구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뿐만이 아니다. 시 주석의 3일 방한에 맞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일 오후 일본도 집단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므로 금지된다는 역대 내각의 헌법 해석에 대한 변경안에 대해 각의를 열어 통과시켰다. 따라서 일본의 집단자위권은 미국 등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공격을 받을 시 무력사용을 통해 반격 저지할 수 있도록 무력행사의 신() 3요건을 포함시켰다. 일본 내 각 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반대여론이 우세했음에도 아베정권은 이 헌법 해석 변경안을 강행 처리했고, 결국 2차 대전 후 미국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전수방위 원칙과 무력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인 평화헌법(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의 무력화를 공식 선언한 셈이다.

한편 일본의 집단자위권 결정을 몇 시간 앞둔 1일 새벽 5시 환태평양 합동군사훈련이 열리는 하와이에서 한미일 군 최고수뇌부가 자리를 같이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회의는 미국의 초청형식으로 한미일 군 최고수뇌부가 사상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와 관련한 방안이 논의되는 자리라고 하지만, 왠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미일 군 최고수뇌부 회의가 일본의 집단자위권 해석 변경안 각의 통과에 맞춰 있고, 나아가 시 주석의 방한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 주석의 방한에 따른 한중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미국의 계산된 수순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해석 변경안 통과와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의 주도하에 열리는 한미일 군사공조를 위한 자리에 한국이 참여했다는 점은 한중관계에 예기치 못할 불씨로 남을 소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여러 가지 정황상, 금번 시 주석의 방한은 한중 간의 신뢰구축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풀어 가는 데 유리한 작용을 기대하는 한국과 경제 협력은 물론 해양 진출과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 패권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 보려는 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절호의 기회로 봐야 한다. 이에 반해 한국과 전통적 우호관계에 있는 미국의 입장은 예봉에 찔린 듯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북한 핵 위협을 빌미로 고집스럽게 꺼내드는 한미일 공조카드는 변화를 막는 하나의 궁여지책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때 우리의 정치적 외교적 처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각축의 현장,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판단의 기준은 과연 뭘까.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 답을 얻어야 하며, 선진들의 생각 속에 혜안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의 현실과 외교적 상황은 구한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쓸데없는 고집도 자만도 두려움도 쇄국도 사대사상도 식민사관도 아니며 시대적이며 합리적이며 자주적이며 주변국과 균형 잡힌 외교와 대승적 처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것은 시 주석의 방한 결단이다. 북한과의 전통적 혈맹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문을 우선 결정한 데는 그의 과감한 결단성이 충분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엇이 중국을 위하고,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의 미래를 위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옳은 길인가를 깊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이라 봐진다. 금번 시 주석의 방한 결과에 유독 관심이 가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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