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제나라 민왕 때 인원 300여 명에게 우()라는 악기를 합주하게 했다. 이 때 한 신하가 읍소했다. “많은 인원이 합주를 하면 악공 가운데 누가 진짜이고 거짓인지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선왕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같이 주장했는데 고쳐지지를 않았습니다. 대왕마마, 아직도 악사들 가운데 엉터리 악사가 있으니 마땅히 가려내야 옳습니다.” “그리하라.” 민왕은 악기를 엉터리로 불어대는 이른바 남취(濫吹)’를 가리기 위해 한 사람씩 독주를 해보게 했다. 그러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상당수가 어디론가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이에 한비자(韓非子)가 말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각각의 개인별 능력을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옥석혼효(玉石混淆)’라는 말도 있다. 보석과 돌이 함께 뒤섞였다는 말이다. 유학과 선도(仙道)에 통달했던 중국 진()나라의 갈홍(葛洪)은 포박자(浦朴子)라는 책을 통해 시대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엔 큰 인물이 나타나지 않고 참과 거짓이 거꾸로 되고 옥과 돌이 혼효할 지경이니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옛날 중국의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일화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모자라지도 않다. 가짜가 진짜를 이기고, ‘거짓인 듯 버젓이 행세한다. 관행이었으니 억울하다고 할 것인가. ‘낙마 1순위로 지목되고 있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논문표절 등 연구부정 의혹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김 후보자가 지난 10년간 제출한 논문 46편 중 단독연구는 딱 2편뿐이다. 거의 다 제자 논문을 베꼈다. 그럼에도 성과급은 성과급대로 다 챙겼고, 제자 연구비까지 빼돌렸다. 기명칼럼도 오랜 기간 학생에게 대필시켰다. 거짓을 앞세운 교육부총리의 교육정책에 과연 영()이 설 지 의심스럽다.

정성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거짓해명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정 후보자는 기동력이 생명인 취재기자 출신이다. 과거 대리운전이 활성화되지 않은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늘 취재원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취재하는 게 일상사였던 기자에게 다른 능력은 다 외면한 채 현재의 잣대로 비판하며 무자격이라고 하는 것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대리운전으로 귀가하다 집 근처에 도착해 직접 운전했다는 말과 관련, 당시 도로 주행 방향이 정반대여서 거짓해명이라는 야당 의원의 공격을 받고 있다. 앞서 음주운전과 관련한 소송을 놓고도 정 후보자가 내놓은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있었다. 동영상에 공개된 음주단속에서 당당하게 가족끼리 왜 그래나 기잔데, 집에 다 왔다구. 소주 2/3밖에운운한 부분도 그렇다. 고위공직후보자로서의 준법정신에 문제가 있는 모양새여서 논란이 되고 있다. 청문회가 옥석을 가려줘야 할 부분이다.

최근 도덕성이나 공정성 못지 않게 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교양과 전문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언급이 있었다. 이는 사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뒤이어 국민의 눈높이를 낮춰 달라고까지 덧붙인 것은 정 총리의 실언인 것 같다. 현행 대통령중심제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과 내각에 임기 중 엄청난 권력이 쏠릴 수밖에 없다. 위정자가 어떤 마인드를 갖고 얼마나 적법하게 예산을 집행하며 얼마나 민()의 편에서 정책을 입안하느냐에 따라 민초들의 생명과 생업이 좌우된다. 이런 상황에서 민도(民度)’를 낮춰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수준과 대통령 눈높이를 높여야 할 일이 아닌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세월호 침몰 때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직원들이 관제 업무를 태만히 했고, 이를 숨기기 위해 CCTV 녹화영상을 삭제한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416일 오전 848분부터 진도 VTS가 세월호와 첫 교신을 시도한 96분까지 골든타임에 시간을 허비한 정황이 드러나자 이를 조작·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다. 제때 배의 이상을 파악해 구호선박 접근과 승객 탈출 조치를 하게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CCTV나 근무일지에 손을 댄 것이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건에도 거짓이 횡행하고 있다. 군은 무엇이 밝혀지는 게 두려운가. 대역을 시켜 병원에서 임모 병장을 빼돌리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병원 측 요구라고 해명했지만 거짓말임이 들통났다. 또한 임 병장 유서 전문을 비공개로 하면서 유족 요청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다. 군은 육군 장교 1명이 체포 작전 중 벌어진 교전에서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 병장이 소지한 소총의 노리쇠 뭉치가 고장나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린다. 정치권 교수 해경 군 모두 신뢰를 잃고 있다. 서울시의회 의원이라는 작자는 살인청부를 교사하고도 웃는 얼굴로 정치일선에서 활동해왔다. 놀라울 뿐이다.

거짓말, 위조, 조작, 은폐언제까지 이 같은 공직비리와 전근대적 관행이 계속될 것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정확한 진상을 알고 싶다. 국민은 거짓이 싫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