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벌

육봉수(1957~2013)

살려달라는 소리 혹시 들릴까
기계를 끄고 잠시
귀 기울여 보다가 결국
베어버린다 베어지고 나면
나무들은 비로소
자연(自然)이 되곤 한다

[시평]
나무가 무성하고 빽빽해지면, 나무들 사이사이에 있는 나무들을 잘라,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을 간벌(間伐)이라고 한다. 이 나무와 저 나무 중에서 어느 놈을 자를까. 그 선택은 다만 톱을 든 사람만이 한다. 그러니 어느 의미에서 나무에게 톱을 든 그 사람은 삶과 죽음을 우지좌지 하는 신과 같은 존재 아니겠는가.
그래서 혹여나 베어지는 나무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소리를 치는, 그 소리 들릴까 하여 잠시 기계톱을 끄고 귀 기울여 보기도 한다. 그러나 베어지고 나면, 결국 그 베어져 나둥그는 나무토막 역시 자연이 아니겠는가. 삶을 버릴 때, 그러므로 삶과 죽음을 초월할 때 비로소 자연이 된다는 그 진리를 우리는 쓰러진 나무에서, 삶의 향기를 버린 나무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태어남도 자연이지만, 삶을 버리는 것 역시 자연의 이치이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듯 살아가는 것, 또한 자연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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