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신계사서 첫 합동다례재 봉행… 기념세미나 제외
생전 김일성도 존경심 표해… 후손에 아파트·환갑상 제공

▲ 만해 한용운스님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의 지도자 만해 한용운스님의 열반 70주기를 맞아 남북 불교도들이 추모의 자리를 마련한다. 남북 불교계가 만해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지홍스님)와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강수린)은 오는 29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만해스님 열반 70주기 남북 합동다례재’를 봉행한다. 다례재에 참석할 남측 불교계 대표단 규모는 통일부의 최종 회신을 기다리는 중으로 최소 20명에서 최대 40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합동다례재는 민추본의 제안을 조불련이 수용하면서 성사됐다. 지난 3월 민추본은 중국 심양에서 조불련과 만나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비롯해 서산대사비 보존보수사업, 묘향산 보현사 추계제향 등의 공동사업을 제의한 바 있다. 올해 만해스님 열반 70주기를 맞아 합동다례재와 학술토론회 등을 공동으로 하자는 뜻을 전했다.

조불련은 “자비와 평등, 평화와 화합의 정신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면서도 “다만 남북관계 등 주변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민추본과 조불련은 이후 수차례 전문을 통해 만해스님 70주기 기념행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들은 만해스님의 열반일인 29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남북불교도가 공동으로 다례재를 봉행키로 했다. 기념세미나는 주제와 내용, 범위 등 현실적인 문제로 제외됐다.

◆“만해스님, 독립운동 실천한 행동파”

불교교계에서도 만해스님 합동다례재 성사여부가 관심사였다. 북측에서도 스님을 ‘민족의 지도자’로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994년 사망한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나섰던 만해 한용운은 조선의 독립이 민족 스스로의 결사적인 행동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행동파였다”고 평가하며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1976년 작고한 만해스님의 아들 한보국에게 아파트를 제공하는가 하면, 직접 환갑상을 내리는 등 최고의 대우로 스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민추본 측은 “남북의 불교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해스님을 함께 추모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남북한 정부의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만해스님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27세 되던 해 인제 백담사에서 연곡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 1913년 귀국해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듬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한 불교의 개혁과 현실참여를 주장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돼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해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펼치며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열반했다. 정부는 스님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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