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게르만 민족은 삼림에서 뛰쳐나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후 독특한 사유와 행위 방식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전쟁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는 오랫동안 원시적인 삼림에서 생활한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민족마다 유년기에 대자연으로부터 생존방법을 배웠다. 게르만은 울창한 삼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했다. 삼림의 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이 자연법칙이다. 이러한 대자연의 잔혹함이 독일 민족의 영혼에 깊이 각인되었다. 농경, 유목, 해양민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의식이다. 근현대사에서 게르만이 조상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이 민족의 행동지침으로 작용했다. 히틀러는 베를린이 공격을 받기 전날 저녁 게르만 민족의 연약함이 증명될 것이라는 이유로 초토화 명령을 내렸다. 그는 삼림의 법칙에 따르려고 했다.

약육강식이 법칙인 삼림에서 인류는 야수와 투쟁에서 이겨야 했다. 야수와의 투쟁은 땅을 가꾸거나, 초원에서 방목하거나, 바다에서 범선을 모는 것보다 훨씬 위험했다. 야수는 인간에 버금가는 지혜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특정 신체부위의 기능은 인간보다 훨씬 발달했다. 이러한 야수와 상대하려면 물리적 역량은 물론 의지, 용기, 지혜, 인내와 같은 정신적 역량도 갖추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협동단결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엄밀한 조직성, 기율성, 복종성이 길러졌다. 게르만 민족의 문화전통에서 두드러진 집체주의와 단결정신은 삼림수렵민족에게 특유한 현상이다. 삼림은 게르만 민족의 군사훈련장 또는 군사기지였다. 게르만의 신체는 매우 장대하고 튼튼하며 행동은 민첩하다. 지혜와 모략도 잘 갖추었다. 동양의 위대한 군사전략가 손자는 ‘군자는 다친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반백의 노인은 잡지 않는다’거나 ‘전열을 정비하지 않은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예전(禮戰)의 단계를 거쳐 ‘병(兵)이란 속임수(詭道)’이며, ‘상대가 생각하지 않았을 때 나아가고, 대비하지 않았을 때 공격한다’는 병학의 정수를 제시했다. 게르만 민족은 손자에 못지않은 용병원칙에 이미 정통했다. 이들은 수렵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전략과 전술에 대한 의식을 지녔으며, 가장 먼저 전쟁기술에 대한 영감을 얻은 민족이다.

그들은 삼림에서 훈련된 전쟁기술을 앞세워 역사의 무대로 뛰어들었다. 고트족이나 로마인도 그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아틸라의 지휘로 유럽과 아시아를 휩쓴 흉노족도 결국 그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동아시아에서 흥안령(興安嶺)의 원시삼림을 무대로 용출한 선비족과 여진족이 연상된다. 불과 수만 명을 이끌고 중원을 석권한 누르하치는 팔기군의 편제를 기반으로 삼았다. 300명 단위로 편성된 ‘니루(牛錄)’라는 이 전투편제는 수렵에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창안한 ‘섬격전(閃擊戰)’은 사행진(斜行陣)과 같은 작전대형으로 은폐성, 돌연성, 용맹성을 포괄하는 풍부한 함의가 있다. 원시삼림에서 야수들과 싸우면서 익힌 전술의 정화를 모은 것이다. 독일군은 프랑스에서 러시아까지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키예프전투에서는 전쟁사상 가장 규모가 큰 포위전을 기록했다. 게르만의 조상이 원시삼림에서 짐승을 포위한 것을 떠올린다.

민족의 대이동이 발생했을 때 아시아에서 온 흉노족의 압박을 받은 게르만 민족은 도망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정복을 계속했다. 그 가운에 반달족의 수령 가이세리크는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 연안의 카르타고를 공격했다. 이들은 다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돌아왔다. 지중해 연안을 한 바퀴 돌면서 전역을 휩쓴 태세는 세계사상 기이한 장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은 독일의 롬멜은 수에즈운하를 꿰뚫고 아프리카의 대문을 열려고 했다. 그의 웅대한 생각은 반달족이 재등장한 것처럼 두려움을 주었다. 슈펭글러는 게르만의 확장을 자기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충동의 근저에는 공포심을 주는 삼림에서 되도록 멀어지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안전한 생존공간을 쟁취하기 위해 세계를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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