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돼지새끼집을 애저라 한다. 애저를 한자로는 ‘아저(兒猪)’라고 한다. 음식 이름에 兒(아이 아) 자가 붙으면 혐오감 때문에 제대로 커 보지도 못하고 일찍 희생되는 아주 어린 새끼돼지가 너무 애석하다는 뜻으로 슬플 哀(애) 자를 써서 ‘애저(哀猪)’라고 한다.

‘애저’하면 진안 애저탕과 애저찜이 있고, 1815년경에 발간된 빙허각 이씨(李氏)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빛고을 광주(光州)와 더불어 진안의 애저찜이 소개돼 있다.

이 책에 보면 “새끼 밴 어미돼지의 배를 갈라 새끼집 속에 쥐 같이 들어있는 것을 깨끗이 씻는다. 그 뱃속에 양념을 넣고 통째로 찜을 하면 맛이 그지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돼지새끼집은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어미돼지를 일부러 잡으면 숨은 덕(德) 쌓는 것만 같지 않으니 그저 연한 돼지로 대신하라”는 충고를 곁들이고 있다.

요리법은 “연한 돼지를 취해 내장과 같이 통째로 가마솥에 넣되, 파와 미나리를 함께 넣고 나물은 나중에 넣어라. 무르게 삶아지면 뼈는 버리고 살은 가늘게 찢어라. 비계와 내장을 썰고, 파는 한 치 길이로 썬다. 생복이나 숙복을 넣는데, 이것이 없으면 전복 고은 것과 해삼, 표고버섯, 박을 썰어 놓는다. 날파 흰 뿌리와 생강을 갈아서 함께 넣고, 좋은 장으로 식성에 따라 간을 맞춘다. 여기에 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넣고 주물러 섞어서 큰 놋함에 담아 중탕해 익힌다. 달걀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부쳐 채친 것을 후춧가루와 잣가루를 같이 뿌려서 겨자에 찍어 먹는다”고 했다.

유중림(柳重臨, 1705~1771년)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저자대(猪子袋)’라고 나오는데, “새끼돼지의 뱃속에 여러 가지 양념을 채우고, 솥에 물한 사발을 부은 다음 대나무를 솥에 걸쳐서 새끼돼지를 안친다. 동이에 물을 담아 솥 위에 놓고 천천히 불을 지핀다. 동이의 물이 따뜻해지면 찬 물로 세 번 바꾸어 고기가 충분히 익으면 식기를 기다렸다가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했다. 규합총서의 중탕형(重湯型) 애저찜과 달리 이 책에는 증류형(蒸溜形) 찜으로 소개돼 있다.

이규경(李圭景, 1788∼1865년)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태돈증(胎豚蒸)·태장증(胎腸蒸)으로, 19세기 말엽 조선 말기의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저태증(猪胎蒸)으로 기록돼 있다 .

궁중에서 베풀어진 연향(宴享) 등 국가적 행사가 치러진 뒤 의궤청(儀軌廳)에서 기록되는 순조무자년(1827년)의 ‘진작의궤(進爵儀軌)’에는 궁중 연회용 탕(湯)으로 칠기탕(七技湯)과 만증탕(饅蒸蕩)이 나오는데, 그 재료로 저태(猪胎)를 첫째로 꼽고 있다. 그런데 돼지고기 요리법이 가장 발당한 중국에는 유독 돼지새끼집찜 요리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애저찜은 우리 고유의 별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애저찜은 아주 어린 새끼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서 꿩이나 닭, 마늘, 두부, 파, 호두 등을 기름에 볶아 넣고 실로 꿰매 고기가 흐물흐물 거릴 정도로 푹 쪄낸 음식이다. 비린내가 가신 애저찜의 살점을 묵은 깻잎에 토하젓과 마늘을 함께 넣어서 쌈 싸 먹으면 산뜻한 향이 입안 가득한데, 살이 워낙 연해 혀에서 감치다가 목구멍으로 설설 녹아들면서 또 한 번 쌈박 감치는 맛이 그만이다.

애저를 쪄낸 국물은 배추김치, 파, 참기름, 들깻잎, 후춧가루를 넣어 간을 맞춘 후 밥과 함께 볶아 먹거나, 찜하고 남은 고기와 함께 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먹어도 좋다. 맛으로나 보양식으로나 이것을 다를만한 음식이 없다고 한다. 비위가 약해서 그냥 먹기가 거북한 사람은 삼베로 싸서 무거운 돌로 눌렀다가 편육을 썰어서 양념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때로는 꿩이나 닭고기를 채우지 않고 인삼, 대추, 전피나무, 포비자 등의 한약재를 넣어 찜보다는 곰으로 하거나, 털을 뜯고 배를 갈라 양념을 바른 다음 참종이를 몇 겹 둘둘 말아 묽은 황토흙 속에 넣어 구워내는 ‘훈제 애저구이’를 해서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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