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예로부터 제주도는 돌, 여자, 바람이 많아서 삼다도(三多島)로 알려졌지만, 근래에 세계자연유산(World Natural Heritage Jeju)으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문화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천혜의 자연환경 이면에 제주는 침략과 저항, 항쟁으로 얼룩진 역사의 기록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역사 속 제주는 동북아지역을 잇는 바닷길의 주요 요충지로 외부문화의 유입과 수용이 용이했지만 외세의 주요관심지역으로 부각되면서 잦은 침략도 겪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침략, 강제수탈을 온전히 감내해야 했던 제주의 고통은 치열했던 항일저항운동과 제주여성의 활약에서 그 실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현재 제주지역은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해녀항일운동)와 고수선(임시정부활동), 최정숙(3.1운동) 등이 여성독립운동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 중에서 여성독립운동가, 애국계몽활동가로 활약했던 최정숙은 제주 애국계몽운동을 실천한 중요한 인물이었다.

최정숙(1902~1977년)은 제주지방법원 초대 법원장을 지낸 아버지 최원순과 어머니 박효원의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1907년 제주 최초 여학교인 신성여학교에 수학했다. 그가 서울 진명여고에 이어 경성관립여고보에서 수학하던 중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유관순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79소녀결사대’의 주모자로 지목돼 징역선고를 받는 등 일제로부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제주로 복귀하면서 최정숙은 지역 내 신진엘리트의 대열에서 신진교육전파를 하며 ‘여수원’과 ‘명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제주여성계몽과 민족교육기관의 강립(强立)에 집중했다.

▲ 여성독립운동가 최정숙(제주신성여고 초대교장) (사진제공: 제주신성여고)
38세의 늦은 나이에 경성여자의과전문학교에 도전해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극빈환자들의 헌신처인 ‘정화의원’을 개원해 지역봉사활동에도 힘썼다. 이후 모교였던 신성여학교의 무보수 교장을 자처했고, 신성여고의 초대교장을 역임하는 등 제주여성교육의 텃밭을 일구었다.

이러한 여사의 행적은 제주여성정신의 요체이자 상징물로 주목받는 제주신성여고 100주년 기념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민족교육의 저변확대에 주력했던 최정숙은 일생을 여성문맹퇴치와 애국계몽활동으로 일관하며 민족과 근대, 여성, 저항의 교집합을 현실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나라사랑정신과 교육, 나눔을 실천한 인물로 인정받아 1964년 제주도 초대 교육감(우리나라 최초 여성교육감)으로 선출됐다.

소통과 단절의 반복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질곡 속에서 제주여성교육과 애국계몽운동의 선두에서 그 존재를 드러냈던 최정숙 여사! 그녀의 행적에서 제주여성의 강인한 정신력과 나라사랑정신, 그 면면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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