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연 기자] “부모의 역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들에게 우리가 좋은 이웃이 돼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영호 센터장,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순간이 꽤 많은 게 현실이다. 이영호 센터장이 부탁처럼 건네는 이 말에는 한부모가정이 여러모로 겪는 어려움이 스며있다.

‘한부모가족’이란 18세 미만의 자녀를 한 명의 부모가 양육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별이나 이혼을 겪은 가정, 조부모가정, 미혼모가정을 비롯해 배우자 한편이 입원·수감 등의 이유로 오랜 동안 양육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그러다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특히 이혼이나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아픈 가시처럼 이들을 찌르고 숨게 만든다. 따라서 드러나지 않는 한부모가정이 존재하고, 관련 정부기관과 단체들은 통계를 내면서도 실제 수치와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가족부가 집계한 2006~2013년 자료를 보면 한부모가구는 매년 약 4만 가구씩 증가하고 있다. 2013년 한부모가족은 171만 4000여 가구로 전체 가구의 9.4%를 차지했다. 10가구 중 1곳이 한부모가정인 셈이다.

고통은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2012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가장 부담이 되는 지출 항목’ 1위에 식료품비가 꼽혔다. 2위는 자녀교육비로 나타났다. 빚을 지게 된 이유 1, 2위는 각각 생활비(35.6%)와 주거비(30.4%)였다.

여성가족부는 한부모가족지원법을 바탕으로 양육비 지원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진행 중이다. 만 12세 미만 아동에 월 7만 원을 지원하며, 조손가족이나 부모가 25세 미만인 경우 만 5세 이하 아동에 월 5만 원을 추가 지원한다. 그러나 이런 양육비는 월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130% 이하인 경우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2명이 있는 3인 가구는 월소득인정액이 172만 7000원 이하일 때만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실제 매달 버는 월소득만 산정하는 게 아니라 토지·주택·금융재산·자동차 등을 정해진 요율에 따라 합해서 반영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해 전체 한부모가족 중 12.9%(22만 600여 명)가 양육비 지원대상에 포함됐다.

백지장이라도… 맞들려는 기업들

“예산만 허락한다면 더 많은 가정에 더 많은 지원을 주고 싶지만, 복지와 예산은 항상 같이 가다 보니 늘리기가 어렵다는 게 난제죠.” 여가부 담당부서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한부모가족 중에는 어머니와 자녀로 이뤄진 모자 가정이 77% 이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가장인 여성의 건강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건강지원사업을 추진하는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오히려 큰 병이 발견될까봐 건강검진을 꺼리는 경우도 상당 수 있다.

열린의사회 김태윤 팀장은 “한부모가족 의료지원을 나가보면, 부모들은 자기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일을 한다. 검진을 해서 중병으로 진단이 되면 포기하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며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실태조사(2012년)에서는 한부모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 58%, 진료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겹친다는 대답이 26.7%를 차지했다. 큰 병이 있을까봐 겁나서 진료를 받지 않는다는 대답도 3.9%로 나타났다.

아름다운재단이 2012년 진행한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사업연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약 70%가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거나 병원 갈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또 설문에 응답한 여성 가장 382명 중 정기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는 비중이 69.5%에 달했다.

이와 관련 아름다운재단은 LG생활건강행복미소기금과 당신의 햇살기금 지원으로 여성가장의 건강검진을 돕고 있다. 매년 200명의 여성가장에 1인당 최대 70만 원의 종합건강검진비를 지원한다. 정밀검사가 필요한 경우 최대 50만 원, 수술 및 치료비는 500만 원까지 추가 지원한다. LG생활건강은 2005년부터 해당 사업을 시작했는데, 임직원과 회사의 1:1 매칭펀드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편견을 넘어… 교보생명, 미혼모 돕기로

현재 양육미혼모인 이서연(가명, 21살) 씨는 생후 6개월의 자녀를 돌보고 있다. 20살 때 임신을 했으나 남자친구는 잠적해 버렸고, 아버지도 임신 사실에 크게 분노하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다가 임신 8개월 때 미혼모시설에 입소했지만 출산 후 3개월이 지나 시설을 퇴소하게 되면서 단칸방에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먹는 생활을 계속했다. 모유수유가 어려워지자 아기는 저체중 상태로 정상적인 발달이 걱정되는 상태다. 한번은 지역 주민자치센터에 한부모 지원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면담을 했지만 아버지의 재산이 많아서 안된다는 대답과 함께 “아직 젊은데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 돌아왔다.

이는 한국여성재단에 접수된 미혼모의 사례 중 하나다. 미혼모는 한부모가정 중에서도 열악한 환경에 맞닥뜨리는 경우다.

한국여성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미혼모는 친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인 인식은 말그대로 ‘좋지 않다’. 같은 한부모 중에서도 사별처럼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경우와 달리, 자기 스스로 (미혼모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 후 출산이 가까워져서 직장을 그만두면 경제적으로도 의지할 곳이 전혀 없게 된다. 거의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경제적․정서적 결핍을 경험하게 되지만 실태파악 및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재단의 지원사업팀 김수현 과장은 “지원이 절실하지만 기업들도 미혼모가족 지원은 꺼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교보생명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금년부터 후원하는 ‘양육미혼모 모자가정 건강지원사업’은 양육미혼모와 자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적인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 또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실태를 조사해서 연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긴급히 치료를 요하는 미혼모 및 자녀 의료비를 지원하며, 급작스런 임신·출산이나 가족과의 단절로 힘들어하는 가정에 정서적 안정 및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행복 찾아 가는 길… 창업·주거 지원

한부모가족을 위해 ‘창업 지원’을 정착시킨 기업이 아모레퍼시픽이다. 아모레 창업주인 故 서성환 회장은 실제로 어머니가 가장의 책임을 맡았던 경우다. 고인은 우리 사회 가난한 어머니들과 그 자녀들이 희망을 놓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이후 유족이 유산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면서 ‘아름다운세상기금’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문을 연 가게는 현재까지 210개점. 신청자는 심사를 거쳐 1인당 4000만 원의 무보증 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

글로벌 주류회사 디아지오의 한국법인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해 여성가족부 산하에 비영리법인 ‘마음과마음재단’을 설립했다. 2017년까지 5년간 매년 10억, 총 50억 원의 재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는 무주택 미혼모 가정에 무료 임대주택 17호를 제공했고, 올 1월에는 현장맞춤형 취업지원 프로그램 ‘봉제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시작했다.

 

이외에도 각종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도움이 곳곳에 전달되고 있다.

LIG손해보험은 홀트아동복지회와 함께 기저귀 등을 담은 365베이비케어키트를 미혼모에 제공한다.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를 통해서는 매일유업 자회사 제로투세븐이 서울시 거주 0세~만 7세 저소득 싱글맘 자녀에게 의료비 지원을 하고 있으며, LG유플러스는 2017년 7월까지 3년간 한부모가족 20가정에 인터넷과 와이파이 등을 무상 제공한다.

제주항공과 PHR KOREA(힐튼 괌 리조트)는 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항공권과 숙박권을 올해 6회에 걸쳐 지원할 예정이다. 세이치즈 아빠곰 스튜디오는 한부모가족의 성장앨범이나 가족사진촬영 등을 지원하며,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한부모가정에 아동의류와 여성의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의류브랜드 숲과 애드호크 등을 전개하는 동광인터내셔날도 여성가족부를 통해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에 의류와 물품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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