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 15:3)”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

한국교회는 기독교가 유입된 지 120여년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세계 제1의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등 실로 많은 성장을 거듭해 왔다. 거기에는 수많은 의인들의 순교의 정신이 있었겠으며 나아가 100여년 전 평양에서 시작된 성령대부흥회를 통한 성령의 대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성장은 멈춰 서고 오히려 침체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성령의 역사는 말씀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진실과 화평하라’는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도 함께한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를 자칭 대표하며 장로교가 주축이 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불길처럼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를 진압하는 소방대원의 역할을 하고 만다. 그것은 이단 감별사를 앞세운 이단세미나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내 편이 아닌 쪽은 이단이란 족쇄를 채워 신앙의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그 기준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계명이 아니라 오백여년 전 마녀사냥으로 수많은 신앙인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신학이 아닌 칼빈의 인학 즉, 사람의 계명과 주석이 기준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 나팔의 역할을 담당하던 이단 감별사들의 면면을 보자. 먼저 진용식 목사, 그는 장로교 목사이기 이전에 한기총에서 이단으로 규정하는 안식교단의 교인이었으며, 그간 학력비리와 목사 안수 과정이 불투명해 지금까지 그 의혹이 끊이질 않는 인물이다.

그 뿐이 아니다. 현재는 그 쪽은 안 되고 내 쪽에서 신앙해야 한다고 강제로 신앙인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데 일정부분 책임이 있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범법자이기도 하다.

이단 감별사 박형택 목사는 요즘 학력 위조로 인한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감히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운 교리 즉,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부인하므로 교단 내에서조차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최삼경 목사 등이다.

이들을 앞세운 그 기관은 도대체 어떠한 곳인가. 또 그들의 말을 듣고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은 무엇인가. 분별력 없는 맹목적 신앙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이제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위의 세 명의 이단 감별사 중에 현재도 가장 많은 세미나 및 개종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진용식 목사의 C3TV 설교 내용을 통해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기회를 지난 호에 이어 가져보고자 한다.

그리고 과연 남을 음해하고 핍박할 자질이 있는지도 점검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시편 기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라 하셨고, 초림 예수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도 예수님도 주무시지도 않고 일하신다는 것인가.

◆ 죄와 하나 될 수 없는 하나님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나라 완성을 위해서다. 다시 말해 아담 범죄 이후 사단 즉, 죄에게 송두리째 빼앗긴 하나님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본질상 죄와 하나 될 수 없는 하나님은 그토록 인간세상을 사랑하사 죄에서 회복할 날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일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죄를 없애기 위해 시편 기자를 통해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것처럼 죄 없는 의인 곧 독생자 예수를 제물로 삼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 즉,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아담 범죄 이전에는 사망이 없었다. 죄의 삯은 사망이란 말처럼 아담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수명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범죄 후에도 하나님이 노아의 세계로 떠나가시기 전에 사람의 수명이 천 년 가까이 살았음이 그 증거다. 아담의 죄로 인한 원죄, 그리고 유전죄, 자범죄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감소하여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시 90:10)”라고 기록되었으니, 오늘날 죄로 인한 우리의 삶이요 현실임을 말씀을 통해 도저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라는 말씀으로 보건데 우리를 사망가운데 종노릇 하게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심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날 즉, 죄로 인해 인간 세상을 떠나셨던 하나님이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리니…(계 21:3)”라고 하시더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4절)”라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장막 곧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금 저 공간적 하늘이 아닌 바로 이 땅에 이루실 날을 기약하고 일해 오신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잠깐 장로교리로 개종교육과 이단세미나를 일삼고 있는 진용식 목사의 설교내용을 들어 보자. ‘하나님나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이루어졌어요, 제사장이 됐어요’라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만드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천년 전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제 것으로 말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 곧 ‘거짓의 아비’라고 했던가.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사망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육천년 역사 이 한 가지를 위해 일해 오셨다. 예수께서도 이천년 전 오직 사망 없는 영생 하나만을 외치다 가셨다.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나라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야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수 믿으면 구원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그만 버려야 할 것이다. 또 구원 받을 자들은 이미 정해졌다는 ‘절대예정론’ 같은 미혹의 말로 백성들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일도 그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구원이 정해진 게 아니라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라는 말씀을 보아 자신의 선택의 문제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애초에 구원 받을 자가 정해졌다면 전도는 왜 하며, 힘든 신앙의 길을 왜 가야 하는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모순 덩어리는 버려라.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나라는 육적 이스라엘 12지파였다. 이 12지파에 포함되지 않으면 이방이 되었으며, 12지파는 야곱이 압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김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졌고, 이스라엘이란 이긴자를 통해 12아들 곧 12지파를 형성하게 되니 바로 육적 이스라엘 하나님의 나라였다.

초림도 마찬가지다. 혈통으로 시작된 육적 이스라엘 곧 자기 땅에 왔으나 그들은 영접치 않아 멸망 받았고 누구든 아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얻게 되니 영적 이스라엘시대를 맞게 된다. 예수께서도 마귀와 싸워 이김으로 이스라엘이 되고(마 4장, 요 16:33) 12제자를 택하니(요 6:70) 이들을 통해 영적 이스라엘 12지파 하나님의 나라(마 19:28)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새언약’이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고 하신 말씀이다. 다시 말해 또 다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시고 계시지 않는가.

다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계시록에 와보니 계시록 2, 3장에 이기는 자를 약속하시더니 그 이긴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12지파 곧 영적 새 이스라엘이 창조(계 7, 14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수께서 약속하신 다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가 창조되는 순간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거짓증거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정확한 말씀의 근거와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천년 전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게 있다. 바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이다. 그 뿐이겠는가.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으니 오늘날 이 땅 위에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되어 있음을 성경은 정확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쉬 동심하지 말라 경고하신 것처럼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요 18:23)”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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