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이 시대를 깨우고 싶다. 혹자는 시론을 읽으며 왜 종교와 평화에 관해 그렇게 강조하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왜 그러겠는가. 누구나 종교를 말하고 평화를 부르짖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천 년 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제자들은 알아봤지만,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19:41~42)”라고 기록됐듯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은 알지를 못했다. 그처럼 이 시대도 종교도 평화도 평화의 사자도 도무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그 시대는 평화의 씨가 뿌려졌다면, 지금은 평화가 이루어지는 때라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이 시대야말로 진정 종교를 알아야 하고, 종교의 궁극적 이념인 평화에 관해 알아야 한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글은 세월호 사고로 희생당한 그들을 향해 온 나라가 같은 마음으로 보냈던 표어다.

하지만 벌써 잊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잊지 않는 길은 무엇인가. 그 옛날 심청이도 17세 꽃다운 청춘을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공양미 3백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졌고, 사흘 만에 부활했다. 하지만 오늘 17세 어린 학생들은 과연 누구의 눈을 띄우기 위해서였을까. 그것은 아버지와 같은 기성세대 즉, 부패하고 타락해 말세를 초래한 이 시대를 깨우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2천 년 전 예수도 종교가 부패해 정치세력과 하나 돼 돈과 권력과 명예만을 쫓을 때, 그들을 향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16:1~4)”. 그리고 은 30냥에 팔려 십자가 지신 후 3일 만에 부활함으로써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시대를 열었으니, 인류의 기원을 바꿔 놓은 것이다. , 당시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가 된 한 시대를 깨우치고자 죄 없는 의인의 피를 흘리고 다시 3일 만에 살아났으니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보여 줄 요나의 표적이요 기적이요 이적이었다.

오늘날 17세 소년 소녀의 죽음이 억울하고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눈 뜬 소경이 된 이 시대는 도래한 이때를 분별해야 하며, 그것이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은 인류에게 평화를 주고자 했지 다툼과 분쟁과 전쟁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니다. 평화는 또한 창조주의 약속이자 이룰 표적이요 기적이다.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 평화다. 더욱이 외교술이나 무력으로는 불가한 것이 평화다. 외교는 상황과 조건이 변하면 깨어지게 마련이고, 무력은 또 다른 무력을 낳게 될 뿐이다. 2천 년 전 예수는 검과 몽치로 하는 자는 검과 몽치로 망한다고 했으니, 피는 피를 부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오랜 기간 평화를 외쳐왔고 평화상을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평화는 신의 섭리 가운데 있어지는 신의 역사일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평화는 하나님의 약속 즉,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고 하신 말씀처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 예수는 이 땅에 평화의 씨를 뿌렸고, 때가 되어 오늘날 한 사람을 평화의 세계를 완성할 평화의 사자로 세워 평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평화의 사자를 통해 평화의 세계를 완성해 가는 이 역사가 바로 또 다시 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에 나타내 보이는 표적이요 기적이요 이적인 것이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4:10)”는 말씀과 같이 지금 대한민국은 물론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평화의 물결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평화의 사자를 통해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달아 믿고 협조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8:47)”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속한 자는 이 시대 나타나는 표적과 이적을 말씀으로 분별하겠지만,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7:52)”라는 말씀처럼,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핍박하려 할 것이다. 어느 시대고 다수는 권력이 되어 그 시대를 유지해 가는 수단에 불과했지 절대 진리는 아니었음을 역사는 교훈하고 있다. 우리는 다수의 편에 설 것인가, 소수의 진실과 진리의 편에 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시대를 분별하고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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