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과 나비

장이지(1967~  )

열세 살 소녀 가장이
일흔 살 할미를 위로하고 있었다.
식은 팥죽 한 그릇을 두고
등신대의 울음 덩어리가 서로 엉겨
간간이 들썩이며 빛나고 있었다.

굴신도 못하는 시든 할미꽃 위에
지친 나비가 날개를 접고 얕은 잠에 잠겨 있었다.
합죽이가 된 입을 오물거리며
그래도 이슥한 생을 건너온 마른 꽃잎이
잠든 소녀의 귓불을 가만히 빚어주고 있었다.

[시평]
봄이면 수많은 꽃이 피어난다. 이 많은 꽃 중에 마치 허리가 굽은 할머니 모양을 하고 있는 꽃이 있어, 이 꽃을 할미꽃이라고 부른다. 합죽이가 된 입을 오물이며 고개 숙이고 있는 할미 모양의 꽃.
열세 살 소녀가장이 얻어온 식은 팥죽 한 그릇으로 할머니를 봉양한다. 어린 것이, 어린 것이 하며 할머니는 속으로 우신다. 어린 손녀는 응신을 못하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어서 드셔요, 어서 드셔요 하며 눈물을 훔친다. 두 울음 덩어리가 서로 엉켜 간간히 들썩이는, 그 참으로 빛나는 풍경.
마치 할미꽃 위에 날개를 접고 얕은 잠에 잠겨 있는 나비의 모습이리라. 합죽이가 된 입을 오물거리며 멀고 긴 이슥한 생을 건너온 할미가 안쓰러움으로 노곤히 잠든 손녀의 귓불을 가만히 빚어주는 그 풍경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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