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드라마나 영화 ‘춘향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이방’이다. 수청을 들라며 춘향을 모질게 대하는 변 사또도 밉지만, 굽실거리며 사또의 명을 받는 이방도 곱지 않다. 위로는 머리를 조아리고 아래로는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얄밉다.

이방과 같은 존재가 향리 혹은 아전이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수령을 임명해 내려 보내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수령을 보좌해 정무에 지장이 없도록 한 게 아전 제도다. 아전들은 이방이나 형방 등의 직책을 맡아 수령을 보필했는데, 정식 관료는 아니었지만 지방 행정 업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아전들이 지역 실정을 잘 모르는 수령을 농락하거나 백성들을 상대로 이권을 챙기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다. 수령이 도리어 향리들 눈치를 살피며 굽실거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안동 지방은 특히 거물급 양반 세도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령이 함부로 처신했다가는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아전들은 자신이 속한 문벌이나 족벌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상민이나 천민들은 아전이 될 수 없었다. 양반이나 선비들끼리 모여 아전을 선발했다. 토론과 논의를 통해 선발하는 방식이어서 일견 민주적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양반 상놈의 구분이 엄격해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였다. 아전들 중에는 더러 중앙의 관리로 뽑혀 올라가 출세를 하기도 했다.

아전들은 고향 사람들을 ‘봉’으로 여겼다. 갖은 구실로 세금을 뜯어내고 사사로이 죄를 물어 두들겨 패거나 옥살이를 시켰다. 수령과 한통속이 되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라며 나라에서 내린 쌀에 비싼 이자를 붙여 장사놀음을 하는 등 못된 짓을 일삼았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아전들은 눈엣가시였다.

아전들도 할 말이 없지 않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나라살림이 궁핍해지자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 나라에서 조직적으로 지방 관리를 독촉했고, 말단 공무원격인 아전들이 백성들을 쥐어 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백성은 토지로써 생업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으로써 생업을 삼는다. (아전은)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써 수확하는 일을 삼는다. 이런 습성이 이루어져서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관성록(管城錄)’에도 “간악하지 않으면 아전으로 여길 수 없고 아전이라면 간악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수령은 아전을 사람의 도리로써 대해서는 안 되고, 오직 분명히 살펴 감독하고 엄한 법으로써 이들을 다스려야 할 따름이다”고 적혀 있다.

얼마 전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제는 국민들이 그들을, ‘분명히 살펴 감독하고 엄한 법으로써 다스려야’ 할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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