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홍명보 축구는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격정적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중심인물로서 오랜동안 월드컵 등 수많은 국제대회를 치루며 파격적인 감정의 대국민 드라마를 연출했다. 국민들은 홍명보의 몸짓, 발 동작 하나 하나에 활짝 웃기도 하고 깊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한국은 페널티킥 대결을 벌였다. 점수는 4대 3. 히딩크 감독은 주장 홍명보를 마지막 키커로 내세웠다. “너는 대선수이고 이번 기회에 이를 보여줘라”는 히딩크 감독의 격려를 받으며 나선 홍명보는 페널티킥 지점에 공을 올려놓은 뒤 여유있게 뒷걸음질 쳤고 스페인 수문장 카시야스를 한 번 쳐다본 뒤 오른쪽 모서리를 향해 슛을 날렸다.

그물이 출렁였다. 대한민국 사상 첫 월드컵 4강 진출이었다.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 모인 4만여 명의 관중은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 됐으며 TV를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불렀다.

허나 홍명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월드컵 사상 가장 일찍 골을 허용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2002 월드컵 3~4위전에서 경기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패스를 위해 볼을 잠시 끌다 터키 선수가 이를 가로채 경기 시작 11초 만에 골을 내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을용과 송종국의 골로 멋진 승부를 벌여 터키에 2-3으로 졌지만 홍명보의 집중력이 떨어진 수비는 히딩크 감독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맹렬한 질타를 받아야 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년 대회까지 월드컵 4회 연속출전을 하고 한국선수로는 최다이자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A매치 135회(9골)’ 출전의 대기록을 세웠으며 2004년 펠레가 선정한 위대한 100인의 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던 홍명보는 지도자로 나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스포츠계의 속설을 깨뜨렸다.

올 2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으로 취임한 홍명보 감독은 세계청소년 월드컵에 대비해 출전한 이집트 3개국 초청대회에서 우승, 상큼한 출발을 보였다.

홍명보 감독은 최근 세계청소년 월드컵에서 지도자로서 진면목을 과시해 선수시절처럼 국민들을 또 열광케 했다. 예선전에서 아프리카 카메룬에게 0-2로 패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성인월드컵판도와 비슷한 청소년 월드컵 본선 첫 경기부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예선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홍명보 호의 청소년팀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청소년팀은 강호 독일과 1-1로 비긴 뒤 미국을 3-0으로 완파하고 16강에 진출했으며 남미의 강호 파라과이를 3-0으로 일축하고 1991년 남북단일팀이후 18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프리카의 복병 가나와의 경기에서 명승부 끝에 2-3으로 석패, 1983년 이후 26년 만에 4강 문턱에서 아깝게 물러섰지만 청소년 대표팀은 강력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 세계강호들에 손색없는 경기력을 과시했다. 청소년 월드컵을 통해 홍명보 감독은 명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청소년팀은 예전 고질적인 골 결정력 빈곤의 문제점이 말끔히 해결됐으며 선수들의 1대 1 대결에서도 기술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미국과 파라과이 경기에서 3골씩을 터뜨리고 완승을 거두었고 가나전서도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케네디 스코어인 2-3의 경기를 펼치는 등 기록적인 면을 살펴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청소년팀이 이러한 전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홍명보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이 큰 힘이 됐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풍부한 자신의 선수생활을 토대로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충분히 개인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력으로 허정무 월드컵 감독의 뒤를 이을 차세대 대표팀 감독감으로 무난하다는 평가이다.

홍명보 장학재단을 통해 유소년 축구선수를 육성하며 축구계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지도층의 책임의식)’를 몸소 실천하는 홍명보 감독이 히딩크 감독과 견주어 ‘홍딩크’로 대한민국 축구와 세계축구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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