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우리나라에 유난히 많은 망부석(望夫石)에 관한 전설은 감동을 받기에 앞서 너무 애처롭게 느껴지는 얘기다. 먼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가 그 남편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기다리던 자세 그대로 돌로 굳어져 서 있게 됐다는 얘기이니까-. 사람이 돌로야 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 길 떠난 남편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여인네의 절개에 관한 얘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얼마든지 리얼 스토리(Real story)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망부석은 전국 여러 곳에 선재해 있다. 그중에서 경남 울주군 치술령의 망부석은 신라 눌지(訥祉) 왕 때의 신하 박제상(朴堤上)의 아내가 돌로 변하여 된 것이라고 전설은 전한다. 박제상은 볼모로 끌려간 왕자를 구출하기 위해 왜(倭)국에 건너가 그를 풀려나게 했으나 자신은 잡히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돼있다. 그 같은 남편의 죽음을 알았던 몰랐던 그의 아내는 치술령 높은 마루에 올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눈물을 쏟고 그리워했을 것이 틀림없다. 돌 보살이 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또 하나, 전북 정읍의 망부석은 현존 유일의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의 줄거리를 이루는 어느 행상의 아내가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석화(石化)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읍사는 ‘달아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로 첫 머리를 시작한다. 그 속에는 행상 나간 남편의 밤길을 걱정하는 여인네의 심정과 함께 그의 남편이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기에 이토록 오래 돌아오지 않는가에 대한 궁금함과 불안, 근심, 의구심 등이 잘 나타나있다.

미국이나 유럽, 중남미, 중동, 동남아나 아프리카에 이처럼 애달픈 스토리를 담은 망부석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유교 문화가 지배했던 중국에는 그것이 있어 오늘에 전해진다. 당(唐)의 시인 왕건(王建)이 ‘望夫石’이라는 제목의 시로서 그것을 읊었다. 그가 읊은 망부석은 무창(武昌)의 한 바위다. 이렇다. ‘임 바라보는 곳(望夫處)에 강물 유유히 흐르는데 바위가 되어 머리 돌리지 않네/ 산에는 날마다 바람 불고 비 뿌리는데 집 떠난 임 돌아오는 날 바위도 말을 하리’로 돼있다.

어떻든 이렇게 보아 한국과 중국의 망부석은 남편이 죽든 살든 아내에게 개가가 허용되지 않던 일부종사(一夫從事)의 문화가 배경이 되어 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녀평등과 여권(女權)이 강조되는 오늘날에는 남편에 대한 연모가 특별히 애절한 여인은 있을 것이지만 그런 경우라도 그 연모가 더는 망부석의 전설로 비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는 망부석(望夫石)뿐 아니라 거꾸로 남편이 아내를 기다리다 그렇게 되는 망부석(望婦石)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다.

망부(望夫) 63년, 우리네에 있는 망부석의 전설을 연상시키는 살아 있는 망부의 전설이 미국에 있었다. 올해 96세의 클래라 겐트라는 여인-. 그는 1950년 한국전에 참전한 남편만을 기다리며 그만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홀로 살았다. 드디어 작년 12월 어느 날, 기다리던 그의 남편 조셉 겐트는 성조기에 가지런히 싸인 관에 담긴 유골로 그의 품에 안겼다. 한국전쟁이 먼 나라 참전국에까지 드리운 슬픈 그림자이며 눈물겨운 얘기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우리에게만 갈라진 남과 북에 숱한 이산가족과 망부(亡夫), 망부(亡婦)를 남긴 것이 아니다. 그는 왜 지금껏 재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나의 남편 조셉 겐트만을 사랑했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부인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연한 일부종사의 의지다. 이혼이든 사별이든 남자나 여자나 혼자 됐을 때 몇 번이라도 재혼하는 것에 대해 추호의 시비가 있을 수 없는 나라에서 63년의 수절도 모자라 죽을 때가지 그럴 것이라니 무척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어떻든 놀랍고 의아스럽다.

클래라 겐트의 이 같은 사연은 5월 26일 미국에서 가장 엄숙한 행사로 치러지는 미국 현충일(Memorial day) 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소개됐다. 오바마는 덧붙여 ‘미국은 전몰 영웅들에게서 힘을 받지만 전몰 영웅 배우자들의 사랑으로부터도 힘을 받는다(We draw strength as well from the love of the spouses of the fallen)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는 것이 자신의 나라 미국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전쟁 영웅들이 있다는 것이 미국을 유지하는 힘인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미국을 위해 희생하는 그 영웅들에 대한 뜨겁고 애타는 애정으로 그들에게 힘을 보태는 배우자들의 사랑 역시 미국을 유지하는 힘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현충일 행사가 가장 엄숙하고 장중하며 전몰 영웅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예우와 처우가 각별한 까닭을 알 만하다. 동시에 그것이 세계 어느 전장에서 전사했든지 간에 자기나라 전몰장병의 유해라면 최후의 1구까지라도 기필코 찾아내 고국에서 영면하도록 하려하는 이유라는 것을 눈여겨봄직하다.

클래라의 애절한 망부의 러브 스토리는 1946년 텍사스를 출발해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열차 안에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고향에 돌아온 조셉 겐트 중사를 만남으로써 시작된다. 그때 조셉은 23세, 클래라는 27세로 조셉보다 3살 연상이었다.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 그들의 결혼은 그로부터 2년 후 조셉의 치열한 프로포즈에 클래라가 진지하게 ‘Yes’라고 대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꿀맛 같은 신혼은 너무나 짧았으며 1950년 조셉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됨으로써 망부의 운명을 강요하는 이별이 찾아왔다. 조셉은 떠나면서 ‘돌아오지 못하거든 결혼하라’했지만 클래라는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진짜 그의 운명이 되어 살아있는 망부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소설 같은 리얼 스토리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