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漢)나라 무제 때 제나라 출신으로 동방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옛 서적들을 읽으며 경학에 힘쓰고 ‘제자백가’에 통달했다.

그는 장안으로 올라오자 그 길로 관청을 찾아가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은 죽간 3천매에 이르는 방대한 글이었다. 관리 2명이 겨우 안고 들어갈 정도였다.

무제는 상소문을 처음부터 읽어 나갔다. 피곤하면 읽은 곳까지 도장을 찍고 쉬었다. 2개월이나 걸려서 모두 읽게 되었다.

무제는 곧장 동방삭을 불러서 낭중에 임명하고 항상 곁에 따르게 했다. 황제는 심심하면 동방삭을 상대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황제는 기분이 좋았다. 삭은 때때로 무제와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식사가 끝나면 먹다 남은 고기와 음식을 모두 가지고 돌아갔다. 물론 옷이 몹시 더러워졌다. 무제가 종종 비단 옷을 하사했으나 그는 그것을 아무렇게나 어깨에 둘러메고 궁궐을 빠져나갔다.

동방삭은 황제로부터 받은 돈이나 비단이 모이면 장안 뒷골목의 미녀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맞이했다. 그래서 황제로부터 받은 재물들은 모두 여자 때문에 없어지고 말았다.

동료 시종들은 이러한 삭을 가리켜 미치광이라고 저마다 손가락질을 해댔다.

무제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삭에게 일을 시키면 무엇이든 훌륭하게 마친다. 그대들은 그 사람의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동방삭은 자기 아들을 황제에게 추천해서 낭관으로 일하게 하였다. 그 아들은 다시 시알자로 승진되어 무제의 사신으로 외국을 드나들며 임무에 충실하였다.

어느 날 동방삭이 궁궐 안을 거닐고 있는데 시종 하나가 말을 걸었다.

“삭 선생, 글쎄 당신더러 주위에서 미치광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오.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럴 거요. 나는 궁궐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놈이니까. 옛 사람들은 그저 산 속에 숨어 살았소만….”

주연이 베풀어지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술기운이 돌면 손발로 땅을 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세상을 피할 데란

깊은 산, 풀이 우거진 도랑 속뿐이랴

세속에 몸 담그고 금마문 안에 몸을 숨기니

매우 고귀한 분 사시는

궁중 안이야 말로 좋구나.-

금마문이란 관청의 대문을 말한다. 문 한 쪽에 동마가 서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한 번은 학자들이 종묘 앞 뜨락에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화제의 소리는 동방삭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마침 삭이 지나가자 그에게 말했다.

“선생, 저 소진과 장의는 한 번에 큰 나라의 왕을 만나서 단번에 경과 공의 자리에 올라서 그 명예가 후세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선왕의 도를 닦고 성인을 존경하고 ‘시경’이나 ‘서경’ 등 백가의 말씀을 모두 암송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문장에도 능통하여 천하에 따를 수 있는 자가 없다고 자부하십니다. 저희가 보기에도 틀림없이 학문이나 식견이 풍성하시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폐하를 받드시길 어느덧 수십 년 그동안 충실하게 애쓰면서도 고작해서 시랑에 머무시다니 공허한 세월만 살아왔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생각건대 무슨 실수라도 저지르셨는지요? 무슨 까닭입니까? 저희에 들려주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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