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오전 서울 대치동 도곡역 지하철 3호선 열차 내 객실 의자가 방화 용의자 조모씨가 뿌린 인화성 물질로 그을려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국민들의 ‘초기대응 감각’이 민첩해졌다. 지하철 3호선 도곡역 객실에서 불이 난 가운데 역사 직원들과 시민들의 침착한 합력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전 10시 54분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도곡역 지하철 3호선(오금 방면) 객실에서 화재가 발생, 오전 11시 5분쯤 진화작업을 최종 완료했다.

해당 전동차 칸에는 승객 50여 명이 탑승, 전동차 전체에는 37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자칫하면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초기대응 덕에 전원 무사히 구출됐다.

이날 방화 용의자로 지목된 남성 조모(71) 씨도 검거됐다. 그는 ‘적은 배상금’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 지난 28일 오후 방화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도곡역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역사 직원들-시민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위기 극복

이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불길이 잡히고, 승객 전원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위기를 침착하게 대응하고자 한 역사 직원들의 사명감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울메트로 매봉역 역무원 권순중 대리(46)는 오전 10시 51분께 도곡서비스센터에 볼일이 있어 전동차에 탑승했다. 내리기 직전 ‘불이야’라는 소리에 놀라 객실을 돌아본 권 대리는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70대 남성이 자신의 가방에서 시너를 꺼내 바닥 등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인 것. 곧이어 ‘펑’ 소리와 함께 가슴 높이까지 불길이 치솟았다. 권 대리는 다급했지만 시민들을 향해 비상벨을 누르라고 외쳤고, 직접 객실에 비치된 소화기를 꺼내 진화작업에 나섰다.

당시 해당 객실에 타고 있던 50여 명은 옆 객실로 급히 몸을 피했고, 몇몇 승객들이 권 대리에게 소화기를 가져다주며 도왔다. 권 씨가 불을 끄면, 조 씨는 다시 시너를 뿌려 불을 지르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소화기 분말이 떨어져 가면 승객들이 나서서 다른 객실의 소화기를 몇 차례나 가져다줬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새로운 소화기 덕에 초기 진압이 가능했다. 오전 11시쯤 불길이 잡혔고, 이후 출동한 소방관들이 오전 11시 5분께 진화작업을 완료했다. 당시 조 씨 가방에는 부탄가스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끔찍한 폭발사고까지 이어질 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3호선에서는 경보방송을 내보냈고, 도곡역 승강장에 진입한 뒤 승객들을 전원 대피시켰다. 부상자는 선로를 따라 대피하기 위해 열차에서 뛰어내린 승객 100명 중 발목을 다친 승객 한 명뿐이다.

이날 지하철 3호선은 도곡역 화재로 인해 연기가 빠져나갈 때까지 도곡역, 매봉역을 무정차 통과했다가 낮 12시 24분부터 정상운행을 재개했다.

▲ 지난 28일 오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도곡역 지하철 방화 사건 피의자 조모 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병원서 치료받던 환자, 알고 보니 방화범… 방화 이유가 기가 막혀

이날 경찰은 “한 남성이 지하철 전동차서 시너로 방화 후 도주했다”며 도곡역 화재 방화범을 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조 씨는 방화 후 도곡역 4번 출구로 도주해 환자인 척 속이고 구급차에 올라탄 뒤 인근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가 30분 만에 검거됐다. 조 씨가 신원을 밝히길 거부하고 취재진을 불러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결국 덜미를 잡힌 것.

조 씨는 턱 없이 적은 배상금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방화를 했다고 밝혔다.

조 씨는 지난 2000년 광주에서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정화조가 역류해 건물주를 상대로 10여 년간 소송을 벌였다. 지난 3월 끝내 승소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배상금 4억~5억 원보다 훨씬 적은 수천만 원대의 배상금만 받게 되자 광주가 아닌 서울을 범행 장소로 골랐다.

그는 “억울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최근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사고를 보고 지하철에서 불을 내면 언론에 잘 알려지겠다고 생각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CCTV를 분석한 결과, 조 씨는 지난 22일 지하철 3호선을 사전답사하기도 했다. 경찰은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판단,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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