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망증이란 기억장애의 한 종류로서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각종 정보를 잘 떠올리지 못하거나 자주 잊어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예컨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과거에 있었던 경험을 잊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건망증을 호소하면서 병원을 찾고 있다. 이른바 주부 건망증이다. 왜 주부들이 건망증에 잘 걸릴까? 먼저 단순한 가사 노동의 반복과 일의 과부하 때문이다. 빨래, 청소, 설거지 등 가사노동은 대부분 노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아무 생각 없이 해치울 수 있는 단순한 일거리들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일들이어서 뇌에 지적인 자극이 없게 되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건망증이 생기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과도함이다. 특히 육아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면서도 예측 불허의 상황이 자주 생긴다. 예컨대 아이가 갑자기 보채거나 울거나 아픈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아이들 가방 챙기기, 약 먹이기, 요리하기, 남편 옷 다림질, 숙제 봐주기, 은행일 보기, 쇼핑하기, 생일 챙기기 등 수십 가지의 일을 주부가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두뇌 기능이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뚜렷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까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망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져라. 나중에 이러한 일을 해야지 생각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그 즉시 메모를 해서 기억을 강화하라. 물론 메모한 것을 들춰보는 것 역시 중요하므로 수첩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좋다.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면 휴대폰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메모를 할 때의 요령은 가장 우선적이고도 중요한 것들을 5가지 이내로 추려서 제목이나 단문 정도로 메모하는 것이다. 문장이 길어지거나 가짓수가 많아지면 잘 기억해내지 못하거나 주의집중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정리할 때 포스트잇을 이용해서 무엇을 정리한 곳인지 붙여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리하는 장소를 절대 변경하지 말고 늘 같은 곳을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중에 정리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여러 가지 감각을 활용하라. 글을 읽을 때도 가급적 소리 내어 읽고, 기억해야 할 내용을 글로 써 보며, 몸짓을 이용해서 말을 하는 등 시각, 청각, 운동감각 등 여러 가지 감각을 모두 활용하면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 여러 가지 뇌 부위를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가급적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유지하라. 우울증의 증상 중 한 가지가 사고능력과 집중력의 감퇴다. 즉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태에서는 두뇌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매사 늘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자주 느낄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넷째,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하게 외면하라. 컴퓨터의 메모리가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 뇌의 기억력도 어느 정도 용량이 한정되어 있다. 특히 작업 기억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쓸데없는 것을 입력하지 않는 것도 더 필요한 것을 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기억력 증진을 위해 전화번호를 100개 이상 외우기도 하는데 이것이 기억력을 증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기억 장소를 차지하여 정작 필요한 기억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시시콜콜한 각종 정보(쇼핑 관련, 교육 관련 정보 등)를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는다. 즉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추려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건망증을 탓하면서 자기를 비하시키지 말고, ‘내가 지금 무척 열심히 살고 있구나!’ 스스로 칭찬하면서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긴장도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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