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조선대학교는 장미로 유명하다. 2001년 의대 동문이 중심이 돼 의대 건물 건너편에 공간을 마련하고 기부를 받아 장미공원을 만들었다. 여기서 자라는 장미는 227종, 1만 8천 주나 된다.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에게 헌정했다는 ‘프린세스 드 모나코’도 있고, 세계 장미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장미들도 볼 수 있다. 겨울에도 얼지 않아 용인의 에버랜드 장미보다 더 알아준다. 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각양각색의 꽃을 피운다.

조선대에서는 해마다 오월이면 장미축제를 열고 시민들의 방문을 기다린다. 장미가 활짝 피는 때에 맞춰 신나는 공연도 펼치고 재미난 볼거리도 마련한다. 하지만 올해는 장미축제를 취소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장미원을 개방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찾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은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를 보면서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위안을 얻는다.

장미는 생긴 모양도 아름답고 향기도 좋아 꽃 중에서도 으뜸으로 대접받는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와 얽힌 신화 속 이야기 등 장미는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돼 왔다. 며칠 전에는 장미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속삭인다는 ‘로즈 데이’라는 날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면 다 장삿속이다.

꽃도 사람들 사는 형편이나 처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대접받는 정도도 달라진다. 일제 때 왜놈들이 나무들을 마구 베어가 우리 산천이 헐벗게 되자 사방(砂防)공사를 한다며 아카시아를 많이 심었다. 아카시아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긴 하지만 목재로는 쓸 수 없고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한다.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를 일부러 베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카시아 꽃은 향기가 아주 좋아 인기가 높다. 꿀을 만드는 양봉업자들에게는 밀원으로 사랑받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아카시아 꽃을 따먹기도 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요즘도 아카시아 꽃이 튀김 등 다양한 요리 재료로 쓰인다고는 하나 그 맛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카시아 꽃을 따 먹었던 그 시절은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때 이야기다. 제사상에 올릴 밥이 없어 아카시아 꽃을 수북이 담아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아카시아 꽃에는 서러운 기억도 함께 어려 있는 셈이다.

아카시아 꽃이 피기 전에 이팝나무가 한창이었다. 꽃이 꼭 쌀밥을 닮았다 해서 쌀밥을 뜻하는 ‘이밥’에 ‘나무’를 붙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팝은 이밥의 사투리이기도 하다. 이 역시 흰 쌀밥 한 그릇도 아쉬웠던 가난한 시절 이야기다. 요즘 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을 보면 팝콘 같이 생겼다고 한다. 흰 쌀밥의 간절함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같은 꽃인데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도는 게 있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드는 것도 있다. 올해는 꽃구경이 즐겁지 않다. 뭘 봐도 서러운 계절이다. 눈물 나는 계절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